특별한 산행
우리 집 막내의 이야기다. 고집 센 큰 누나와 똑순이 작은 누나에 치여서 어린 시절을 얌전하게 보냈다. 남자애가 하얀 얼굴에 몸은 삐쩍 말랐다. 이미지는 모범생이고 성실했지만 실상은 꼴찌였다. 남아선호 사상이 짙은 집안에 아들이라고 사랑을 독차지했다. 지금도 아들이 뭐 먹고 싶다 하면 며칠 뒤에 그 반찬이 식탁에 올라오는 것 같다.
공부 머리는 없지만 의지력 하나는 대단했다. 우연히 운동을 시작하더니 소위 말하는 '몸짱'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보디빌딩 대회를 나간다고 몇 날 며칠을 닭고기만 먹었다. 냉장고는 닭가슴살로 가득했다. 하루 먹기도 힘든 걸 운동하는 내내 먹었다. 익힌 닭가슴살을 믹서기에 갈아먹기도 했다. 냄새도 이상했다. 이 이후로 나는 지금도 닭가슴살만 보면 괜히 헛구역질이 나온다.
남동생은 운동하면서 성격이 까칠해졌다. 몸이 힘드니 짜증이 났겠지. 하여튼 몸집이 커지니 쉽게 때리지도 못하겠고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운동하는 모습을 몇 번 지켜봤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미칠 듯이 자기를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스러웠다. 한 번은 나와 여동생이 멋 모르고 운동 알려달라고 했다가 며칠을 고생한 뒤로 절대 같이 운동하지 않는다.
사회에 나와 헬스 트레이너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런저런 공부도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생활했다. 서울에서 본가로 내려와 자격증 공부하고 아빠 일을 도왔다. 주식에도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서 수익을 쏠쏠하게 내는 것 같다. 주린이 누나와 엄마에게도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준다. 고맙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동네 공장에 출근한다고 선언했다. 어디 가도 굶어 죽지는 않을 녀석이다. 동시에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되고 속상했다. 첫째 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둘째 날은 급식 사진을 찍어 보내더니, 셋째 날은 우리 강아지들 사진을 보냈다. 공장에 있어야 할 녀석이 무슨 일이지? 지금도 자세한 에피소드는 모른다. 착하고 책임감 강한 애가 밥 먹다 뛰쳐나올 만큼 속상한 일이 있었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그날 오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산행을 간 동생은 퇴근하고 가보니 뻗어서 자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가족들을 위해 고기 구워줬다. 며칠 전 누나 생일이라고 선물 기대하라고 하더니 에어팟을 사줬다. 눈물 나도록 고맙다. 잘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