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날숨에 날려 보내기

[런중일기]

by 달리는아이

부쩍 차가운 냉바람이 몰아친다.
그럴 땐 달리기를 하며 명상을 한다.
들숨에 "나쁜 생각", 날숨에 "날려 보내기".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일부러 떠올려가며,
숨을 내쉴 때마다 하나씩 떠나보낸다.




1. 초등학교 5학년,
동생과 집에 가던 길.
같이 살던 사촌언니는 옥상에서 나만 불러
"둘이 다니지 말라"며
내 복부를 수차례 발로 걷어찼다.


2.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오랜만에 만난 외삼촌이 반가워 활짝 웃었다.
그날 밤, 사촌언니는 배드민턴채로 나를 내리쳤고,
헤드 끝이 손가락 사이에 박혀
피가 쏟아졌다.


3. 실험처럼 강요하던 괴롭힘.
사람 머리카락과 쌀벌레를 먹으라고 했고,
큰 초콜릿을 입에 욱여넣고 씹으라 했다.
그 이후 나는 지금까지 초콜릿을 씹어 먹지 못한다.


4. 밤샘 고문.
같은 방을 쓰며 방 청소를 했지만
사촌언니는 먼지 검사를 했고,
불만족스러우면 밤새 무릎 꿇은 채 잠도 못 자게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 무수면도 고문이다.


5.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체벌.
성경공부와 기도장을 강제로 쓰게 하고,
오답이 있으면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6. '날 사랑하면 뛰어내려 봐'.
4층 높이.
그녀는 내게 뛰어내리라고 했다.
죽고 싶었던 나는 진심으로 시도했고,
그제야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7. 자다가 맞았다.
잠결에 망치로 머리를 맞았다.
그녀는 내 옷을 벗기고,
팬티 바람으로 집 밖으로 내쫓았다.


8. 내 동생은 늘 분풀이 대상이었다.
한참 어렸던 그는 자다가 실수하곤 했다.
1년 넘게
잠꼬대로 “잘못했어…”라며 빌곤 했다.
그게 습관처럼 몸에 새겨졌던 아이였다.



이건 그냥 과거사가 아니다.
‘날숨에 날려버리고 싶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누군가는 허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나는 이런 기억들을 달고 살아간다.
그 기억들과 싸우며,
정신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달리고, 살아낸다.

그리고 나의 동생도,
또 다른 생존자이자,
이 고통의 목격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아동학대는 절대로 벌어져선 안 됩니다.
주변에 학대받는 아이가 있다면 꼭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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