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오늘의 명언 - 토머스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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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을 굳게 믿는 사람이며, 내가 더 열심히 일할 수록 더 많은 행운이 따르곤 한다.

I'm a great believer in luck, and I find the harder I work the more I have of it.

- 토마스 제퍼슨


토머스 제퍼슨(영어: Thomas Jefferson, 1743년 4월 13일 ~ 1826년 7월 4일)[2]미국의 정치인으로 3번째 미국 대통령(재임 1801년 ~ 1809년)이자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이다(1776년). 제퍼슨은 영향력 있는 건국의 아버지의 일원이었고, 미국 공화주의의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그의 업적은 루이지애나 매입[3]루이스와 클라크의 서부 원정, 지중해 해적 소탕 등이며 소수의견의 존중, 종교·언론·출판 자유의 확립 등에 주력하였다.

과도한 중앙집권을 싫어하는 공화주의자로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였으며 연방주의를 반대했다. 시민의 자유, 정교분리, 엄격한 헌법 해석을 지지했다.[4] 또한 도시의 산업 경제보다 농촌 경제가 미국의 특성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1809년, 퇴임후 버지니아몬티첼로에 돌아가 1819년 버지니아대학교를 설립하고 스스로 학장에 취임하여 민주적 교육의 보급에 노력하였다. 또한 철학·자연과학·건축학·농학·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몬티첼로의 성인(聖人)'으로 불리었다.[5] 미국 지폐중 1976년에 첫 발행된 2달러의 앞면에 제퍼슨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긍정적 평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가장 혁명적인 인물로서, 신의 이름을 빌어 미국 혁명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하였다. 군주제에 저항(영국에 반발하는 것)은 신에 대한 복종이라는 그의 발언에서 이를 알 수 있으며, 권리장전 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이런 종교적인 관점을 많이 강조하였다.

그는 비록 이신론자라는 비판을 기독교인들(청교도나 칼빈주의자들)받았지만, 품위와, 지나치다 싶을 정직, 국가를 위한 이타주의적인 헌신을 한 지도자였다.[91]


부정적 평가

하지만 인간의 권리를 백인의 부르주아나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 한정 지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생전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둔 것이 1998년 유전자 검사결과 사실로 판명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그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주장을 하였으며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자유는 하나님의 선물로 이를 침해하는 것은 그의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하느님이 공정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조국을 위해 몸이 떨린다'는 어록을 남겼다.[92] 하지만 그는 200여 명의 노예를 가지고 있던 농장주였고 자신의 노예들을 해방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도 그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93][94] 또한 쇼니 족 추장 테쿰세 형제 등에게 강제로 미국문명을 주입하는 과정에서의 마찰도 존재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부성을 가장한 인종차별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가치관을 지녔다는 시각도 존재하고 있다.[33] 노예 제도가 미국인들의 도덕적 성격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노예 제도의 폐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95] 또한 노예 제도로 인하여 참혹한 유혈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 예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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