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동네 소아과 선생님에게서 위로를 받다

by MINA

아이를 임신하고 약 10kg 정도 쪘다. 마지막 초음파를 볼 때 이미 우리 아이는 3.7kg 정도 된다고 했다. 오차범위가 있으니까 사실 그 몸무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아이가 작지 않아서 그런지 유도분만 시기를 2~3일 내에 잡았다. 그전에 나왔으면 했지만, 아이는 나올 생각이 없었고 결국 유도 분만을 진행했다.

촉진제를 맞고선 생전 처음 겪는 고통으로 너무 괴롭고 힘들었는데, 여전히 자궁 경부가 열리지 않아 나중에 수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고 너무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나중엔 약효가 너무 잘 듣더니 생각보다 이르게 출산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아이를 꺼내시면서

"어? 생각보다 많이.. 큰 데..?"

라고 하시며 아이를 거의 뽑아내다시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근데, 이제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이 몸무게는 3.985kg! 작디작은 내 몸에서 4kg에 육박한 아이가 나오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조리원으로 옮기고 정확하게 이틀 만에 내 손목은 아작이 났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우리 아이는 정말 우량아처럼 튼실해서 내 뱃속에서 다 자라서 나온 아이 같았다. 조리원 선생님도 먹성도 남들과는 달라서 남들보다 훨씬 많이 먹는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런데 내가 본 건 달랐다. 누우면 먹은 걸 분수토를 하며 먹은 그대로 다 토해 냈으니까 우리 아이 위가 남들보다 그 정도로 클 것 같진 않았다. 조리원 젖병은 거꾸로 들고만 있어도 분유가 잘 나온다. 그 정도로 구멍이 크기 때문에 아이 성격이 너무 급해서 막 먹다 보니 자기 양보다 많이 먹고 그대로 다 토하는 거였다. 젖병을 바꿀 순 없어서 일단 분수토를 잡으려고 분유부터 바꿨다.

먹는 방식과 분유를 바꾸니 한결 나아졌다. 우리 아이가 먹는 양은 적으면 적었지 남들보다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조리원 퇴소 후 다른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있는데 우리 아이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젖이 적게 돌아 혼합수유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나 젖이 잘 나왔으면 아이가 좀 더 잘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부터 젖병을 바꿔볼까? 분유를 바꿔볼까? 수차례 테스트를 거치며 매일 같이 아이가 먹은 걸 기록하였다.

어느 날 아이 접종 때문에 소아과를 가야 하는데, 그전에 다니던 곳은 매번 택시를 타고 오래가야 해서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동네 소아과로 갔다. 들은 대로 낡고 오래된 소아과 느낌이지만 깔끔했다. 손님도 별로 없어서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더 있으신 거 같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다정다감하신 스타일은 아니셔서 애들이 좀 무서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접종 전에 아이의 발육 상태나 기본적인 진료를 보시고 나서 말씀하셨다.

"육아하기 참 힘들죠? 공부하는 거나 일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를 거예요"

"아.. 네.. 좀 힘드네요"

"힘들 거나 걱정되는 일 있어요?"

"저희 아이보다 작게 태어난 애들도 벌써 얘보다 커졌는데 아이가 너무 안 먹어서 안 크는 느낌이에요. 주변에서도 너무 걱정하고, 왜 이렇게 안 먹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나 아빠가 입이 짧은 건 아니고요? 어른도 밥 먹기 싫을 때 많잖아요. 애들도 똑같아요. 어디 안 아프고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주변에서 하는 말 듣지 말아요. 대체 누가 그런 얘길 해요?"

"아무래도 양가 어른들께서 연락 주시면 궁금하고 걱정돼서 말씀을 많이 하시죠."

"육아는 마라톤이에요. 이건 나한테 하라고 해도 못해요. 벌써부터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 쓰고 힘들어하면 안 돼요. 아이가 안 먹어서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걱정해야 할 일인데, 아이 건강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급하게 닦고 아이 접종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다정하지 않은 말투에서 이런 얘길 나눠서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졌달까? 집에 가는 길에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한테 어떤 문제가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스트레스 속에서 구출되었다.


가끔 육아 때문에 힘들 때 이 일이 생각난다. 이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공부나 일은 정답이 있지만, 육아는 꼭 그렇지 않다. 남들에게 맞는 거라도 우리 아이한테 안 맞는 것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넓게 보고 더 길게 생각하면서 육아를 하자. 스스로에게 매일 다짐을 한다.


정요한 선생님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의 편인 줄 알았는데 내 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