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클수록 육아는 더 어려워

아무도 쉬워진다고 한 적 없다.

by MINA


어느 날 유치원에서 아이가 풀이 죽은 얼굴로 나오자마자 말했다.

"오늘 A한테 인형 줬어"

"응? 왜?"

"달라고 해서"

"주고 싶어서 준거야?"

"아니"

"근데 왜 줬어?"

"자꾸 달라고 계속 말해서"

"그래도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돼"

"근데 걔가 선물 안 줬으니까 줘야 한대"

"무슨 선물?"

"생일 선물"

"생일 아니지 않아? 엄청 오래 전인 거 같은데"

"자긴 줬는데, 난 안 줬다고 달래"

"엥? 받은 적 없는데. 키링이 엄청 갖고 싶었나 보다"

"엄마 나 그거 받아줘"

"네가 준 걸 어떻게 받아줘"

"주기 싫었단 말이야. 엄마가 받아줘"

"선물로 줬다며. 주고 다시 뺐는 게 어디 있어? 안 줬으면 됐잖아"

"달라고 해서 줬다고 했잖아! 그리고 걔도 나한테 준 거 다시 가져간 적 있잖아!"

"그러게 가방에 그런 걸 왜 달고 갔어? 가방에 안 달았으면 이런 일 없잖아"

...

유치원에 장난감은 가지고 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보통 키링을 많이 달고 다닌다. 비슷한 사건이 예전에도 다른 아이와 한 번 있었다. 그땐 키링이 아닌 어른 투명 립스틱(립밤)이었다. 내가 선물로 받았지만 쓰지 않아 아이가 장난감처럼 잘 가지고 놀았다. 겉에 큐빅이 박혀있고 화려해서 너무 예쁘다고 했었다. 그걸 유치원에 가져간 모양이다. 나 대신 남편이 등원시켰는데 같은 걸 친구가 가지고 있는 걸 보고선, B도 똑같은 게 있더라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싸한 느낌에 아이 방을 뒤져보았는데 내가 찾는 립스틱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하원할 때 아침에 일을 아빠한테 들었는데, 아이에게 혹시 B에게 선물로 주었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도 아침에 그걸 보고 자기 가방에서 없어진 걸 그제야 알아챘단다. 아이의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몰래 가져간 셈이다. 그날 B는 손에 가지고 있다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자기 부모님한테 건넸고, 우리 아이는 그걸 지켜보았다. 한 마디로 몰래 가져갔다가 친구가 가져간 것이다.


사실 이 얘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상대 부모한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유치원에는? 얘는 대체 이런 행동을 왜 했을까?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아이는 대뜸 그 아이 엄마에게 연락해서 받아다 달라고 한다. 더 고민만 깊어갔다. 내 아이의 워딩을 그대로 빌리자면 훔친 건데, 그걸 그 아이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말했을 경우에는 큰 실례를 범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B는 말을 하고 빌려갔는데, 우리 아이가 못 들었을 수도 있고 여러 다른 상황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고민하다 빌려갔는데 돌려주는 걸 깜빡한 것 같다고 달라고 할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근데, 왜 내가 받아다 줘야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미션을 주었다.

"그 친구한테 달라고 말하고 오기!"

매번 말하는 걸 까먹었다고 하다가 어느 날 오늘은 말하고 왔어!라고 자신감 있게 아야 기했다. 근데 그게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받아다 줘라는 이야기가 또 돌아왔다.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 것인지 이젠 나는 모르겠고 나 대신 좀 해달라는 건지 아이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고민 고민을 하다가 아이한테 이야기했다.

"난 그 엄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 넌 유치원에 가지고 가면 안 되는 물건을 가져갔어. 맞지? 근데 그걸 잃어버렸고, 여러 번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네가 여러 번 놓친 거야. 심지어 그 물건은 내 거였는데, 네가 몰래 가지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온 거니까 엄마한테 미안한 게 먼저야. 그리고 앞으로 그런 물건은 가지고 가지 마"

아이는 시무룩해졌다. 어쩌면 내가 나서서 다시 그 물건을 되찾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의미에서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을 보지 못했으니 온전히 아이의 말이 100%가 맞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중에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일은 어떻게 해야 하냐며 말이다. 친구한테 빌려줬는데 못 받은 것 같다고 가볍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맞다. 사실 나도 처음에 똑같은 방법으로 대처를 하려고 했다. 근데 내가 왜 그렇게 선뜻 행동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내가 아이의 해결사가 되어 줄 수는 없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시선에서만 보기 때문에 나에게 오롯이 전달한 내용이 사실일지 언정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이미 편견에 싸인 채 이야기를 할 수밖에. 게다가 아이들은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엄청 가볍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그땐 주고 싶었다가 막상 주고 나니 싫은 경우도 매우 많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서 본다고 아이의 의견을 안 들어주자니 '엄마는 내가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생길까 무서웠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일어나지만 여러 가지 상황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같은 건 우리 아이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해결을 하려면 우리 아이를 내가 잘 가르치는 것이 제일 빠르고 효과적일 것 같았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대로 이야기하면, 다른 아이들도 좀 더 명확하게 우리 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을 말로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B야, 립스틱 가져가서 나 너무 속상했어"

"A야, 주기 싫은데 자꾸 달라고 하면 나 화나"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자기 기분을 이렇게 표현해도 되냐고, 이렇게 얘기하면 친구가 싫어하면 어쩌냐고. 그동안 자신의 감정보다 친구의 감정에 좀 더 신경 쓰며 놀았던 것은 아닌지 속상했다.

"친구가 속상해도 괜찮아. 다른 사람 때문에 누구든지 속상할 수는 있어. 근데 네가 싫은데 친구 때문에 억지로 어떤 행동을 하지는 마. 친구를 위해서 좋은 마음으로 부탁을 들어주는 건 좋지만, 하기 싫은데 친구가 시켜서 억지로 친구한테 맞춰줄 필요는 없어. 너한텐 니 감정이 우선이야"

원래도 밝은 아이이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연습을 한 뒤에 유독 더 밝아보였다. 그동안 많이 참아왔던 걸까? 어쩌면 아이는 나를 닮아 감정을 말로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좋고 싫음의 표현을 다양하게 하라고 하는데, 좋고 싫음도 표현하지 않고 살아서 나에겐 더 어렵게 느껴지나 보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더 많이 발생할까 막연한 두려움도 덮쳐왔다. 여자 아이들만의 미묘한 감정싸움까지 한 스푼 더하면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하다. 미숙한 아이들의 사회생활을 우리 어른들이 지혜롭게 잘 풀어나갈 수 있게 지켜보고 내가 먼저 바뀌도록 노력해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