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 떠나신 선생님을 기억하며.
"네 선생님?"
" 저 선생님 동생입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나의 영원한 멘토는 하늘나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셨다.
2003년 가을이었다. 대학원을 합격하고 군에 입대한 내가 그해 6월에 전역할때 선생님은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병문안을 갔는데, 선생님은 간의 혹이 생겼는데, 작게 만드는 과정이라고만 말씀하셨고,
큰 문제는 아니라고 걱정말라고 하셨다.
그 이후 연락을 드렸었는데, 병세가 악화되서 전화받기도 어려우신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고3 담임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첫 상견례때, 반장을 선출했어야 했다. 우리는 하고싶다는 친구가 있어서 투표로 그 친구를 밀어주기로 결정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고3 담임으로서 반장, 부반장이 1년을 같이 생활하는데 매우 중요해서, 직접 임명하겠다고 말씀하시고, 갑자기 " 야 떡배 네가 우리반 반장이다"(떡배는 내 별명중에 하나였다.)
난 깜짝놀라서 "저요?" 선생님께서는 "그래 너".
그렇게 난 엉겁결에 우리반 반장이 되었다.
열일곱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와 어렵게 사는 내게 선생님은 사관학교 진학을 권유하셨다.
사실 대학갈 형편이 안된 나는, 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고,
다행히 최종 면접까지 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집으로 우편이 갔던 시절이었고, 학교에는 유선으로 통보를 해주었다.
어머니는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우체국에 직접 가서 통지서를 기다리고 계셨고,
선생님은 나를 불러서 불합격 했다고 말씀하시며, 너는 최선을 다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가보자고 용기를 주셨다.
나는 야간자율학습때, 복도에 혼자나와 정말 많이 울었다.
선생님은 나를 불러서,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라고 했다.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어 주시며, 집에 갈때 뭐라도 사가지고, 들어갈때 꼭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하셨고,
"어머니가 너보다 더 많이 슬퍼하셨을거야, 그러니 꼭 씩씩하게 웃으면서 들어가"
나는 친구들보다 일찍 하교해서,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씩씩하게 집에 들어갔다.
걱정한것과 다르게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셨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고 하시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불합격 통지서를 받자마자 어머니도 많이 우셨다고 하셨다.
그해, 대입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생각했던것보다 점수가 너무 안나와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선생님은 국립대 진학을 권유하셨고, 그렇게 나는 입학 장학금을 받고 국립대를 입학했다.
일부 대학등록금을 지원해주셨는데, 그때 선생님의 친구분들에게 말씀하셔서 그분들이 나를 도와주셨다.
선생님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시고, 그렇게 나는 멘토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큰 충격을 받았다.
매년 스승의날, 선생님 기일에 산소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돌아가신지 22년만에, 선생님 산소에서 사모님과 선생님 따님을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사모님은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며, 다음에 꼭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 8살이었던 선생님 따님은 서른살이 되었다.
물론 내나이도 내년에 오십이다.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다.
2006년부터, 선생님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후배들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어서 처음 몇몇의 동기와 후배들과 시작을 한 것이 벌써 20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하늘에 계신 선생님이 제자들을 보고 환하게 웃는 날까지, 그 은혜를 잊지않고 앞으로도 열심히 갚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