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이 Sep 17. 2020

나의 첫 사회생활 이야기

나 홀로 청각장애인 직원으로 살아남기

예전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에서 앤디가 유행어처럼 하던 대사가 있다.’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때~~’라는 대사처럼 나에게도 취업은 쉽지 않은 인생의 관문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공모전도 나가서 수상도 하고 나름 학생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일원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사실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취업이 안 되는 것이라곤 생각하진 않았다. 점점 취업시장 관문이 좁아졌지만 지방이라는 한계와 장애인이라는 핸디캡, 시대적 상황 등 종합적인 어려움 속에 나는 서울로 상경을 결정했다. 부모님은 딸을 멀리 보내는 것에 반대했고 나는 150만 원만 들고 서울로 아빠 몰래 상경을 감행했다. 2-3달간은 돈을 벌 목적으로 고시원에서 지내며 패스트푸드점 알바와 공공기관 인턴을 병행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점 때문에 서비스직을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고객들의 주문을 상대하며 꾸준히 사회경험을 쌓곤 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듣는 부분에 신경을 너무 써서인지 머리가 어지럽곤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에 반대하시던 아빠도 보증금을 구해주셨고 그것을 발판 삼아 본격적인 구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인턴 근무를 하며 남는 시간엔 전공을 살려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취업을 시도했다. 운이 좋게도 의류 브랜드 쪽에선 유명한 회사의 디자이너로 입사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까지는 친구들과 지내고 보통은 익숙한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기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모두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모두가 서툴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말한다면 보통은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조심한다거나 과도하게 배려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사회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준 보이지 않는 가르침처럼 처음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장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상대방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팀원들에게 먼저 ‘커피 한잔 하실래요, 같이 밥 먹을까요?’ 라고 먼저 다가가며 사회생활에 적응을 시작했다. 그 당시 친했던 상사이자 지금은 동갑이라 친구로 지내고 있는 친구 덕에도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팀을 옮길 당시에도 옮기지 말고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한 팀장님이자 지금은 친한 언니로 지내고 있는 언니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사람들과 잘 지낸다고 회사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업무능력으로 얘기해야 되는 것이고 단순히 사람만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면 배려받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핸디캡에 대해 많이 궁금해할 것이다. 일전에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 글을 썼다. 크게는 당연히 전화업무가 있을 것이고 팀원들 모두가 함께하는 회의에 참여하여 회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만약 장애인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보호받고자 했다면 전화나 팀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업무만 하고자 했다면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화업무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사내에서는 메신저를 하거나 사무실에 찾아가서 직접 만나고 얼굴을 보는 것으로 극복 방안을 찾았다. 하지만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전화업무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중요하여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업무를 재조정하여 디자인 관련 업무를 더 맡는 것으로 조정하였다. 팀 회의 같은 경우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이 더 필요했다. 


우선 회의 내용을 최대한 미리 파악하고자 했고 회의가 끝난 후 정확하게 전달됐는지 확인하여 업무의 효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었다. 장애인인 직원이 나뿐인 회사였기에 팀장님에게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사내에서 제공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 건의로 회사에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가 바꿔가고 환경을 만들어가면 된다는 경험을 얻은 직장생활이었다. 


장애라는 부분이 핸디캡이 될 수 있지만 조금의 노력과 신경을 더 쓴다면 크게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있다. 극 중 이선균이 되뇌며 늘 하던 대사가 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대사가 내 직장생활에서도 참 유용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그 장애로 한계를 만든다면 결국 정해진 만큼의 일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그 장애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직원들과 동등한 여건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 중에 스스로 갖고 있는 장애의 한계를 정의하고 그것을 본인의 한계로 받아들인다. 사실 그 한계라는 것들이 본인이 정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인 인식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나와 같은 처지의 청각장애인 지인들도 취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요새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본인의 노력만으로 취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회를 얻고 난 후 본인이 장애라는 한계를 만들어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작은 불편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