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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Oct 10. 2020

내가 말하는 '극복'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건가요?


극복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냄’이다. 


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성공한 많은 장애인들(대표적으로는 안드레아 보첼리 같은 유명한 성악가)의 스토리를 접하곤 한다. 특히나 예술장르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나는 이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경우도 장애인 중에서 노래를 잘하는 성악가가 아닌 세계 최고의 성악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된 것(비록 선천적이지는 않았지만 꽤 어린 나이에)은 비장애인들에 비해서는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사실 내 기준에선 노래를 잘하는 것과 시각장애인인 것은 크게 연관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를 극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조금 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드레아 보첼리



어릴 적부터 늘 듣던 이야기가 있다. ‘예쁘게 생겼는데 청각장애인이라니 참 안타깝구나’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썩 기분이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 말들을 무수히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천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세상을 이해하게 될 무렵부터 이미 청력이 희미해졌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에 대해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잘 듣고 비장애인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청각장애를 갖게 된다면 바뀌게 된 상황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유치원도 다니기 이전부터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었던 것이다. 비장애인들처럼 잘 듣는 삶이 내게 없었던 만큼 잘 듣는 삶의 조건이 누구에게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나의 조건 또한 악조건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극복이라는 말을 표현할 수 있는 경우는 아마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에 해당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갑자기 성적이 떨어져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극복하고 그것으로서 내 안의 작은 성취를 얻거나 성공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장애라는 것은 내가 노력한다고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비장애인처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 보이는 장애의 극복이라는 점이 비장애인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계발을 하고 성취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성공을 바라볼 때
악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본인의 노력을 통한 개인의 성취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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