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fey - Let you break my heart again
며칠 전 도서관엘 갔다. 그날은 꼭, 조금이라도 앉아 있다 오고 싶었다. 오랜만에 그런 시간을 만들었다. 책 한 권과 노트북을 들고서 집을 나섰다. 도서관 마감 전까지 주어진 한 시간.
익숙한 도서관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반가운 평화가 찾아왔다.
작은 어항의 물소리, 어느 학생의 책장 넘기는 소리, 도서관이 내는 백색소음이 기분 좋게 귀를 간지럽혔다. 책먼지 냄새마저도 좋다.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와 활자들로부터 보호받는 기분.
무위의 시간이 된다 하더라도 그곳에 있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해진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은 내게 그런 곳이다.
하지만 막상 할 것에 집중하지 못했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턱을 괴고 졸아버렸다. 평소 그 시간엔 큰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잠시 졸아버린 그 시간마저 달콤했던 것이다.
사실, 요즘 음악을 잘 듣지 못하고 있다. 예전처럼 하루에도 수십 곡씩 호기심 있게 찾아 듣거나 집중해서 찾아 듣거나 하는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선뜻 어느 음악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 최근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던 시간은 음악 취향이 비슷한 단골카페 사장님께서 틀어주시는 순간들이 전부였다. 집에선 언제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태어나고 넘치고 있는데, 막상 선뜻 어느 음악에도 손이 잘 가질 않는 것이다.
수년 전 일기를 보면 열정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 모든 걸 모으고 공부하며 기록했던 내가 보인다. 그런데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흔적을 보며 다른 세상 같다고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단 것은 내가 목표로 삼고 심상으로 되뇌지 않은 채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음악에 대한 사랑이 점점 사라지고 있거나.
계획도 루틴도 많이 무너졌고, 운동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신곡 라인을 사보하며 다듬어야 하고, 편곡도 시작해야 하는데 컴이 고장 났다는 이유로 그저 미루고 있다. 적은 시간이지만 음악연습이나 공부할 수 있는 시간엔 요즘은 책을 읽고 글 쓰는 데에 더 시간을 쓰고 있다. 피곤해서 쉰다는 명목 하에 나태하게 보내는 시간도 적지 않은 것 같고. 이대로는 안될 것만 같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다. 삶이 바빠서인지, 많이 지쳐있기 때문인지, 내 마음 어딘가가 바뀌어가고 있어선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딘가 조금씩 서서히 적지 않은 시간을 지나며 변하고 있었는데 애써 핑계 대며 외면해 왔을지도 모른다. 변한다는 사실이 조금 두려워질 즈음, 그게 어떤 계기로 인해서 툭 건드려졌고, 이제야 나로 하여금 직면하게 만든 것 같다.
지난주, 음악극 일을 제안받았었다. 매우 아쉬웠지만 일정상, 사정상 힘들다고 답변드렸다. 그 일은 며칠간 내 마음을 씁쓸하게 붙잡고 있었다. 과거의 내 흔적을 보면서도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마당에..
아마도 제안 거절이 외면했던 내 마음의 둑 언저리를 툭 건드렸나 보다. 그 답답한 마음이 다른 여러 일들과 맞물려 내 발길을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 것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다듬는 시간은 사실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인데도 그날은 꼭 도서관에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도 어디를 갈까.
음악 어플을 켜고 레이베이의 신보 앨범을 들었다. Lover girl을 한강 라이딩 플레이리스트에 넣었다. 그리곤 그녀의 프로필에 들어갔다가 처음 듣게 된 인기 곡.
너무나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레이베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여전히 뭔가 멀어져 있는 기분이지만,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듯 음악은 조용히 옆에 머물러주었다.
졸다가 깨어나서인지, 더 나긋하고 편안하게 그 순간의 나를 감싸준 것 같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곤 서가를 둘러보며 알랭드 보통의 도서를 찜해두고, 도서관을 나섰다.
그때 들었던 곡, 레이베이의 링크를 남긴다. 나처럼, 누군가에게도 이 음악이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https://youtu.be/NLphEFOyoqM?si=X5dGliSfU-8BB1it&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