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2편
직진.
직진.
마음에 물러섬이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직진.
한 발 한 발 진중하게 내딛는 그런 슬픈 선율.
하지만 어쩐지 뒷걸음질 치는 직진.
나약하진 않지만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며 세상과 멀어지는 직진.
울면서 서슬 푸른빛을 내뿜어 다가갈 수 없는 직진.
그렇게 다가가기도, 물러서기도, 보호하기도 하는 직진.
그저 선율이 하는 이야기를 바라보며 듣게 되는 슬픈 서사의 직진.
4분 음표로 뚜벅뚜벅 한 음씩 천천히
음간의 간격도 넓게 넓게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는 바이올린 선율은 음의 파고와 함께 넘실댄다.
제목 : 서주와 알레그로 Praeludium and allegro
작곡 : 크라이슬러 Fritz Kreisler
연주 : 정경화 바이올린, 필립 몰 피아노.
레이블 : 데카 DECCA
음악을 들을 땐 항상 음악만 먼저 듣는 편입니다.
듣고, 들으면서 내 마음에 귀로 다가오면 그때서야 자연스럽게 알고 싶어져요.
작곡(사)가는 누구인지, 이 곡은 어떤 스토리가 있고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지,
누가 불렀는지, 누가 연주했는지, 누가 지휘했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일련의 정보들은 곡을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처음 접했던 곡의 이미지에 학습된 정보를 덧입히는 느낌을 줄 때도 있어요.
음악자체를 즐기는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정말 궁금하고 반드시 알고 싶어지는 순간에 다다랐을 때 곡정보를 접하는 편이에요.
아.. 너무 슬프잖아.
악보를 보고 싶었습니다.
작곡가와 대화하는 시간,
작곡가가 말하고자 하는 음악의 언어를 들여다보는 시간.
악보를 볼 때는 음을 귀로 상상하면서 봐요. 독서를 하는 기분이죠.
음악을 들으면서 악보를 보면 마치 오디오북 들으며 독서하는 것 같고요.
박자와 셈여림표, 연주방식은 어떤 느낌이면 좋겠다는 순간순간의 지시어가 다 담겨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곡의 역사적인 배경과 정보가 들어가면 더 깊이 그 음악과 깊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근거를 만나게 됩니다.
내 가슴을 찌른 구간을 악보에서 찾아보자, 첫 번째
1. 제일 최고음과 최저음이 만드는 음정
포르테로 4분 음표로 한음 한음 힘줘서 시작하는 꼿꼿함이 처음부터 읽힙니다.
내 마음을 제일 깊게 울리는 부분은 제일 마지막 마디예요.
마지막 줄의 19-22마디의 빨간 네모 부분!
그중에서 제일 마지막 마디를 보시면
빨간 별 '시'는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제일 높은음이고
파란 별 '시'는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제일 최저음인 '솔'에서 2음 올라간 음입니다.
이 곡에서 두 음정의 간격이 제일 큰 부분이 바로 이 단 한마디에 있던 것이죠.
음간의 간격이 넓을수록 마음의 파고도 함께 벌어지는구나. 하고 다가온 부분입니다.
한예종 박정규 교수님께 분석 수업 들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어요.
제일 최고음, 제일 최저음을 잘 살펴보라고.
그리고 음정이 제일 큰 지점도 함께.
제일 최고음인 빨간 별, 제일 최저음인 파란 별을 잘 따라가 볼까요?
악보의 빨간 별, 파란 별을 피아노건반에 표기해 봤습니다. 잘 보이시나요?
한 마디 안에 이렇게 음정이 제일 크게 벌어져있는 곳.
그곳에 심장을 건드리는 구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악보가 나오니까 잠시 어지러우신가요?
빨간 별과, 파란 별만 기억해 두시고 잠시 크라이슬러로 화제를 바꿔봅니다.
아주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크라이슬러가 작곡한 곡이라 기교적으로도 화려해서, 예고 실기곡으로 많이 연주된다고 합니다. 예고 복도에서 끊임없이 지겹게 들을 수 있는 곡이라고요.
저에겐 이 아름답고 슬픈 곡이 지겹지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비전공자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겠지요.
크라이슬러의 연주는 정열적이면서도 아무런 나쁜 버릇이 없고 대단히 개성적이다.
그는 단지 악보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우아한 미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당당한 구성력에 따뜻한 인간미를 겸했다.
내 가슴을 찌른 구간을 악보에서 찾아보자, 두 번째
이게 가능하다고? 한 활에 동시에 3음을 연주할 수 있다?
네, 가능합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군림했던 연주자가 작곡한 곡이니만큼
곡의 후반부에 가면 바이올린의 화려한 중음주법이 등장합니다.
쉽게 말해 화음입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쌓인 것처럼요.
3중이면 음이 동시에 3개가 울리고
4중주면 음이 동시에 4개가 울립니다. (동시에, 혹은 아주 근소한 시간차를 두고 두 번에 나눠서)
악보에서 확인해 볼까요?
초절기교의 곡들도 더 있지만, 이 구간도 바이올린 연주자분들에겐 잔혹한 구간이 되기도 하겠어요.
어떤 곡의 연주자이자 작곡가라면, 곡의 테마에 맞게 표현된 표기들이 악보에 기술적으로 잘 담길 거예요.
반면 그 악기를 다룰줄 모르는 작곡가라면 그 악기론에 대해 배워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전 첼로를 잠시 배워본 적은 있지만, 초보 수준에 머물렀기에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음악적 지식을 책에서 찾아도 보고, 음역대파트도 한번 더 체크하고 검수과정을 거칩니다. 전공하신 분들께 들려드리며 피드백도 받아보고요.
그래서 주된 악기 하나를 잘 다룰 수 있다면 작곡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현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악기론에 대한 이해 없이 작곡을 하면,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어법을 다 활용하지 못하는 곡이 나오겠지요?
활용하지 않더라도 알고서 곡의 의도에 맞게 활용하지 않는 것과,
모른채 활용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악보를 연주자에게 넘겼는데 연주자가 조심스럽게 작곡가에게 " 이 음은 연주가 안됩니다." 이런 일이 녹음 현장에서 벌어지면 안 되겠지요?
( 네.. 제가 그랬었습니다.. 전 다행히 녹음 전에 많이 고쳤다지요.. )
이렇게 독주곡이나 실내악에서 동시 화음으로 풍부한 화성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연주가능한 중음주법이 아닌 음들을 마구 악보에 그려내면 안 될테고요.
전 소심하게 2중주법을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 있었다면 3중주, 4중주법 다 거침없이 그려냈을거고요. 그래서 작곡가는 악기론 공부는 물론, 악기 연주자들과도 평소에 친하게 지내면 좋다고 합니다.
사실은 곡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머리를 조금 쥐어뜯다가 피아노로 녹음해서 여기저기 들려주며 수소문했습니다. 알지만 곡제목은 모르겠는 그런 곡. 클래식 대부분이 그런 곡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그러다 제게 많은 사랑과 도움을 주고 계시는 영화음악감독님께서 3시간 만에 답을 주셨습니다. 예고시절을 떠올리며, 선율이 주는 시대성을 따라 올라가며 검색을 하며 찾으셨다고 하네요.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아빠도 못 알아들으셔서 정답을 보내드리니, 위의 CD와 책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좀 기가 막혔던 건, 제가 이 곡을 수소문하기 며칠 전에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버전의 연주들, 악보를 겸한 영상과 함께 악보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오늘 서두에서 들려드린 정경화의 연주는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온 앨범이라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즘 들리는 직진의 감상 관점에서는 아이작 펄만과, 특히 양고운님의 연주가 더 깊이 다가옵니다.
빠르기도, 강한 보잉의 활이 그을때 나는 씩씩하고 날카로운 색채감도 그 느낌에 부합되고요.
Itzhak Perlman - Fritz Kreisler - Preludium and Allegro
Yang Kowoon - Fritz Kreisler - Praeludium and allegro
Fritz Kreisler - Prelude and Allegro (audio + sheet music)
imslp에서 다운로드한 악보파일입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제일 처음에 들려드렸던 정경화 앨범의 연주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흘러나와서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황사가 가득 낀 날이어도 더 반가운 맘으로 글을 발행합니다.
구독자분들, 오늘 하루도 즐거운 조각 하나 가슴에 가져가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 2편 -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전주곡 알레그로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