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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07. 2023

색소폰 붓으로 장편소설을 쓰는 김오키의 새턴발라드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9편 - 멜랑콜리에 대하여


https://youtu.be/bHY6de0tN90


1. 우리 만나고 헤어짐이 이미 정해져 있지 않기를



김오키.

그는 먹물이 진득하게 묻은 한 자루의 붓을 들었다.

그 붓은 색소폰이다.

붓 끝에 떨어지는 먹물은 멜랑콜리한 선율로  

색소폰의 동그란 벨밖으로 흘러나온다.

자유로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쓸쓸한 서사.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여는 마음이 돼버린다.


한 손으로 턱을 괴어 머리를 왼쪽으로 푹 기울인 사람,

무릎산을 세우고 앉아 포근이 두 팔로 안은 사람,

고개 숙인 채 갈 곳 없는 손가락을 괜스레 이리저리 헛헛하게 만지작 거리는 사람,

옆사람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어, 눈물을 그 어깨 위로 떨어뜨리는 사람,

가져온 가방에 제 머리를 뉘우고 옆으로 편하게 누운 사람..



지난 2월25일 공연 전 모습



김오키가 이끄는 새턴발라드의 새턴 Saturn은 토성이다.

토성은 멜랑콜리의 별이다.

새턴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다.


그렇다.

김오키 새턴 발라드도,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음악이 숏폼으로 빠르게 소비되는 지구별을 잠시 떠나 토성으로 왔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마음이 닮은 사람들이 미묘한 문을 열고 들어가, 조회수가 조회되지 않음이 자연스러운 장편소설을 들으려고 말이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김오키 새턴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사유의 길이를 원하는 만큼 기꺼이 늘려주고,  

시간이 멈춘듯한 순간들을 너그럽게 선사한다.


길고 긴 문학을 음악으로 향유하는 시간.

귀에 천천히 현현하며 닿은 서사는

맘속에 아득한 눈길을 고요하게 만든다.






https://youtu.be/Agu8nmDutS8


2. 볕처럼 빛나는



김오키는 10년 가까이 활동한 재즈 색소포니스트다.

그분의 음악이 내 맘에 처음 들어온 것은 올해 2월, 재즈 플레이리스트에서였다.

곡이 시작하면서 반짝이듯 흐르는 피아노가 시선을 끌었고, 이내 천천히 들어오는 색소폰 선율에 귀가 확 열렸다.


나는 윤슬을 좋아한다.

햇빛이 물에 드리워 반짝이는 부서짐을 가만히 지켜보면 행복하다. 밤의 도심 불빛이 한강물에 비추는 드리움 역시 좋다.


아니나 다를까.

김오키 새턴발라드의 공연에서 이 곡을 연주하시다가 갑자기 잠시 멈추시고

이 곡은 윤슬을 표현한 곡이라고 짧게 설명하시고선 다시 연주를 이어가셨었다.

하.. 연주가 잠시 끊겨도 이리 자연스럽다니. 억지스럽지 않고, 관객들은 기꺼이 다정하게 바라본다.


볕처럼 빛나는


오늘의 Setlist



음악을 접할 땐 되도록 음악자체를 먼저 듣고, 그 후에 아티스트에 대해 알려고 한다.

만약 김오키 님을 검색 먼저 하고 음악을 접했다면

‘재즈계의 이단아’라는 비슷한 기사 제목과

레게음악하실 것 같은 헤어스타일을 보며 스피릿 선발대 앨범 커버사진을 호기롭게 바라봤을 거다.


게다가 지금에서야 네이버프로필 수상내역을 보니

2020년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2020년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재즈 음반

2014년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최우수연주상!!



https://youtu.be/rlBLghQEa4w


3. 코타르증후군



음악을 듣기 전에 결과로 보여지는 타자의 워딩과 앨범자켓 등 이미지를 먼저 봤다면, 난 그 어떤 선입견 없이 들을만한 자세가 되어있을까?

자신 없다. 그렇기에 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음악자체를 먼저 접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항상 내 안의 편견과 경계를 거둬내고, 본질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싶다.

완전한 공감은 일단 나를 없애야 가능한 것이니까.







https://youtu.be/p6W-gW02nY8


4.  점도면에서의 최대의 사랑



‘ 오늘 최근 좋아하게 된 김오키의 공연을 운 좋게 보게 되었다.


처연하고 쓸쓸한데, 재즈여도 직관적인 진실된 느낌을 준다.

베이스와 피아노가 은유적으로 잘 잡아주니 색소폰 선율이 더 생생하게 잘 살아나는 걸까.

곡제목들 마저도 아름답다.


오늘 내겐 너무 완전한 선물이다.

활동한 지 꽤 되신 다작하시는 아티스트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도. 그렇게 그분의 멜랑콜리한 음악이 내 안에 깊이 들어온 것도.

또 팔로우하자마자 뜬 공연링크를 보고 예매한 것도.

제일 늦게 도착해서 차라리 서서 보려고 벽에 기대 있었는데, 공연 직전 정중앙 제일 앞자리에 자리가 나서 앉게 된 것도.


역시 음악은 실연이다.

음원으로는 비교될 수 없는 사운드..

한 발자국 이면 닿을 수 있는 공간 사이에서

마음과 마음, 심장과 호흡이 음악으로 맞닿는 느낌이 참 좋다. 더더욱 이런 소규모공연은 늘 옳다 :) ‘


- 공연본날 2월 25일 일기 중에서.



ⓒ 지니매거진 - photo by 김연


그의 소리엔 날 것의 거친 모습도 있다.

색소폰에서 때때로 대금같은 소리가 나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김오키 님만이 주는 매력 같다.

풍류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한량이라도 된 기분이랄까.


스마트폰의 영향아래 숏폼의 영상소비가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2분을 넘기지 않는 곡들이 많아지고 있고, 심지어 1절만 있는 노래도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소개한 곡들 중 제일 짧은 곡이 6분대, 제일 긴 곡은 10분대이다.

내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나 드라마도 1배속 초과하는 속도로 본다고 한다.


그래도 한편으론 유명 틱토커가 김오키 님의 음악을 잘 리메이크해서 화제가 된다면 참 좋겠다.

그렇게 높아진 대중적 인지도로 인해 우린 그분의 장편소설을 더 즐길 수 있는 토대를 더 견고히 할 수 있다면야 ㅎㅎㅎ


사랑하는 것들은 계속 표현해야 한다.

좋은 건 함께 나눠야 한다. 나만 알고 있으면 점점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더 많이 많이 소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Q. 뮤지션으로서 지향하는 지점이 있나요?


A. 전에는 ‘제가 마냥 좋으면 된다’였는데, 요즘엔 그래도 이제는 나만 좋은 음악만 해선 안 되겠다 싶어요. 완전히 상업적으로 방향을 튼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돈이 벌려야 제가 하고 싶은 것도 계속할 수 있으니까. 그 정도?


20년 9월 지니매거진 인터뷰 중





https://youtu.be/pA6JqncI0Ss


5. 심정



새턴발라드는 김오키 테너(색소폰), 진수영(피아노), 정수민(베이스)로 이뤄진 팀이다.


젝스키스 백댄서이기도 하셨던 김오키 님은, 태권도 사범님 2년, 관장님의 5년의 세월을 인생 최대의 암흑기라 하셨다.

프랑스 영화 ‘증오’를 보시다가 주제곡인 John Coltrane의 Say It 곡에 반해서 바로 색소폰을 배우셨다고 한다.

슬슬 주변에서 음반 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에 음반 만들어서 내가 가져야지! 라는 생각으로 1집을 발매하셨다고.


https://youtu.be/DqV_XTs1aiE

황덕호의 Jazz Loft 를 보며 발췌한 이야기들 입니다.



김오키의 오키는 ‘오키나와’에서 따온 거라는 그는 음악은 재밌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큰 재즈클럽보다는 소규모 공연을 하시는데 두 가지가 이유가 있다.

업장과 뮤지션 사이의 존중이 있고, 손님(팬)들도 음악을 듣는 태도가 진중하고 재밌게 즐기며, 피드백도 하는 분위기의 공연. 그런 무드를 원하며, 또 그렇게 자연스럽게 된다고 하신다.


공연과 음반 판매로 음악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김오키.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돈도 벌어야 하니 일처럼 하고 계시다고.

그래서 더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내가 즐거워야 한다고 말한다.

"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이 느껴진다. 재밌게 살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고, 관객들은 다 그것을 음악으로 느낀다."


음악에 따라 2개의 팀이 있는데, 뻐킹 매드니스는 와일드한 스타일의 음악이고

요즘 주로 활동하고 있는 새턴발라드는 잔잔한 발라드 스타일의 음악이라 소개한다.






https://youtu.be/EPdMFYmNVt0


6. 서로 말하지 않아도 - 진수영


이 곡은 피아노 진수영 님의 솔로앨범에 실린 곡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진솔하게, 즐겁게 음악하기 위해 또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속에서 느끼는 고단함도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는 아티스트 김오키 님에게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가치 있게 나의 중심축에 두어 행동으로 꾸준히 이어가시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시, 그림, 사랑 등 다양한 모티브로 멜랑콜리를 그리는 김오키.

찰나와 같은 임팩트가 강요되는 음악홍수 속에서

그가 써 내려가는 장편소설이 더 의미 있게 빛을 발하는 이유다.


정수민님과 베이스가 그려낸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운 모습. 이 벽을 얼마나 많이 쳐다봤는지 모른다.



태양의 신 제우스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쫓아내서 맞이한 것은 시간이 사라짐으로 인한 불멸이었다.

불멸 앞에선 탄생과 죽음도 없고, 빛과 어둠도 없다.

하지만 태양을 등지고 걸어가는 이의 앞엔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없다.

삶의 이중성을 무시한 채 한쪽만 치우치면 삶의 동전 양면이 주는 소중함을 느낄 수가 없다.

고통과 아픔을 아는 자가, 진심 어린 따뜻한 다정함을 건넬 수 있는 이유다.


크로노스, 새턴, 멜랑콜리의 별, 시간을 통해 삶의 양면을 다 끌어안은 후에야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사함까지.

우리 모두 그렇게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성숙해지고, 감사하는 맘으로 사랑하기를 바란다.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 9편 - 색소폰 붓으로 장편소설을 쓰는 김오키의 새턴발라드였습니다.
' 고통 속에 침잠해 있을 때 무엇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시리즈는 별도의 소주제로 꾸준히 이어가 보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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