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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14. 2023

자클린이 새겨 준 푼크툼의 순간 - 엘가 첼로협주곡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10편 - 자클린 뒤 프레


어느 날 불현듯 파고들어 내게 깊은 흔적을 남기는 순간들이 있다. 용의 눈이 찍히는 화룡점정이 되는 순간 말이다.


자클린 뒤 프레가 연주한 엘가의 첼로협주곡 4악장 말미의 연주영상이 내게 그런 의미가 되었다.

그전에는 없던 다른 세상이 된다. 스투디움을 뚫고 들어오는 푼크툼으로 인해 전과 후가 구분되는 세상으로.


1967'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 85번 4악장 끝나는 부분, 나의 푼크툼이 되어준 순간이다.


https://youtu.be/OPhkZW_jwc0?t=1770



작곡가 : 에드워드 엘가 Elgar, Edward (1857-1934)

곡제목 : 첼로 협주곡 e단조 작품번호 85번. Elgar's Cello Concerto op.85

작곡연도 : 1919년 5월~8월 3개월간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스투디움이라고 한다면, 그 틈을 비집고 내게 주관적으로 특별한 의미로 깊게 새겨지는 순간을 푼크툼이라고 한다. 그게 없던 세상은 곧 사라지고, 내 경계가 다시 새롭게 눈뜨며 생기는 지점이 되어준다.


그러면 내게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진 걸까?

기존의 많은 연주들은 ‘첼로를’ 연주한다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갈고닦은 연주자들이 유려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그 피땀 어린 시간들이 느껴졌었다. 첼로와 연주자가 서로 완벽한 호흡을 주고받는 듀오의 조합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클린의 연주하는 엘가의 첼로협주곡 영상을 본 후 그 이상의 느낌을 받았다.

첼로를 연주하는 그녀가 아니라, 첼로는 이미 그녀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악기로 보이지 않고 그녀의 몸에 종속되어 완전히 하나가 된 첼로음들의 춤사위로 들렸다.


그녀가 4살 때 라디오에서 들리는 첼로음을 딱 가리켜서 ‘ 바로 이 음, 이 소리가 나는 악기, 그 악기’ 라며 배우고 싶다 했던 첼로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담하게 느린 속도, 굵고 강렬한 비브라토와 과장된 포르타멘토,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셈여림, 구슬픈 음색까지, 우수에 젖은 20대의 Jacqueline du Pré 를 만나게 되는 레코딩이죠.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산 그에게 애수와 고뇌로 가득한 Elgar의 협주곡은 곧 그 자신이었습니다.'

- 애플뮤직 설명 중









영상에서 느꼈던 푼크툼의 순간 3곳이다. 첫 번째 영상 안에도 악보가 함께 실려있다.


악보출처 imslp


첫 번째 (17초) : 한 활로 뻗는 오른팔과 눈빛

점점 느려지면서 오른팔이 바깥방향으로 천천히 뻗어나간다. 눈빛과 포즈의 카리스마만으로도 일순간에 고요하게 얼어버리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완전히 그녀에게 복종한 듯한 첼로가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26초) : 미끄러지는 글리산도

한쪽 지판 같은 줄에서 다른 쪽으로 음이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주법이다.

피아노에서 ' 솔파미레도 ' 5개음이 하행하며 연주한다면, 첼로에서는 '솔파미레도 ' 이 정확한 5개의 음 사이사이의 셀 수 없는, 계이름으로 명명되지 않는 수많은 음들까지도 모두 연주된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방식과, 자전거가 탈 수 있게 곡선으로 내려가는 길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여기 악보에서는 셈여림이 점점 더 세게 연주하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자클린은 그 부분의 다이나믹도 카리스마 있게 단도직입적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


현악기 글리산도 설명 중에서 - 사무엘 에들러의 관현악기법연구의 현악기파트 17p


세 번째(37초) : 날카롭게 꺾이는 머릿결

첼로의 가장 최고 높은음이 힘차게 나는 순간이다. 그때 그녀의 반 묶은 긴 머리가 찰랑~하고 힘차게 흔들리며 솟아오른다. 힘차게 그 음을 치며 잠시 숨 고르기 한 다음,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선율이 펼쳐지며 곡이 끝난다.


피아노 건반의 시선에서 보는 첼로음역대와 바이올린 음역대의 비교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서 인상 깊게 다가오는 지점은 음원을 집중해서 들을 때도 오지만, 실황 연주영상 속에서 연주자나 지휘자들의 눈빛과 표정 제스처에서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런 순간들이 내가 선호하는 음악적 묘사가 담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면, 나만의 음악언어 표현으로 잘 정리해 두고 작편곡 관점에서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임미현 작곡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완벽하게 몰입한 눈빛, 춤추듯 활을 자유자재로 내 몸의 일부처럼 노래하는 팔, 그렇게 자클린에 복종한 첼로는 첼로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있는 그대로 내어준다.

때론 칼날처럼 날카롭게, 때론 거칠게 울듯이 포효하는 그녀의 비브라토는 현란하면서도 널뛰듯 살아있다. 떨리는 비브라토가 너무 과해도 자연스럽지 않을 때가 있는데 자클린의 비브라토는 영혼까지 뒤흔들어 어찌할 수 없게 만든다.


담백하고, 정제된 슬픔이 있다면 자클린은 확실히 그 반대편에서 감정을 날것 그대로 직접적으로 와닿게 표현한다. 분명히, 그런 독보적인 아우라가 있다.


당시 주변인들도 그녀의 연주에 감탄보다 걱정을 더 많이 했다고 한다. 그날의 공연이 늘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전체의 인생을 놓고 보면 몸을 아껴 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빨리 세상의 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1945-1987)







에드워드 엘가 Elgar, Edward (1857-1934)


이제 음원으로 들어보는 시간이다.

그전에 이 곡의 역사를 여러자료들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으로 재정리해 보았다.


1919년 5~8월 : 작곡기간

1919년 : 초연 - 10월 펠릭스 살몬드 첼로, 앨버트 코츠 지휘, 런던 심포니. 처참한 실패로 기록됨.

1920년 : 엘가의 아내 서거

1928년 : 두 번째 공연 - 베아트리스 해리슨 첼로, 엘가 지휘,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 호연으로 명예회복.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34년 : 에드워드 엘가 서거

1962년 : 자클린 뒤 프레가 이 곡으로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데뷔. 그해 말 BBC프롬에서도 연주.

1965년 : 이 곡이 대중적으로 급부상한 계기. 자클린 뒤 프레 첼로, 존 바비롤리 지휘, 런던 심포니

1967년 : 자클린 뒤 프레 첼로,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런던 필하모닉


이 앨범으로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다시 태어나게 된다.




https://youtu.be/gy-z8TBm2Cg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의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1962년 당시 자클린 뒤 프레는 불과 19살의 나이에 명연주를 해냈다. 그 후 1965년 처음 1,2악장을 녹음한 뒤 휴식 중에 이곡의 연주가 훌륭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곧 녹음스튜디오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3,4악장을 녹음할 때는 거의 실황연주 수준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음반을 들은 러시아의 명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자클린 뒤프레만큼 연주할 자신이 없다"라면서 1965년 이후로는 이곡을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연주한 기록은 1968년 카네기홀에서의 연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

- 나무위키 참고


저번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로스트로포비치는 파블로 카잘스와 더불어 그녀에게 사사했던 스승이다.

그리고 이 곡은 많은 첼로 연주자들이 도전하는 곡이지만, 여러 음원을 들어봐도 자크린 뒤 프레의 연주만큼 다가오는 연주가 아직 없었다. 앞으로도 많은 연주들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자클린의 연주만큼은 내게 푼크툼을 안겨준 순간의 고유대명사처럼 온전히 그녀만의 자리로 남겨두고 싶다.



지난 4월에 발행했던 자크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글입니다.

https://brunch.co.kr/@minachoi/33



작곡가인 에드워드 엘가에게 이 곡은 끝까지 아쉬움으로 남은듯하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자국민들에게 이 곡을 바치는 마음,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다급함에 병중에서도 급히 써 내려간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고 한다.  또 대중들은 밝은 곡인 ‘사랑의 인사’나 열정적이고 신나는 ‘위풍당당행진곡’ 같은 것들을 내심 기대했는지 모른다. 엘가도 그의 부인도 생각지 못한 대중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적잖이 실망했었다고 한다.


이 곡의 형식 분석 설명입니다.






엘가의 죽음 이후 30여년이 지나 그 곡을 자클린이 되살렸다.

그리고 자클린의 죽음 이후 오펜바흐의 100년간 잠자던 곡은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그녀의 비통하고도 찬란했던 첼로연주자로서의 삶에서 큰 의미가 되어주는 곡들은 모두 죽음이 관통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삶의 탄생과 죽음, 사랑과 이별. 특히 죽음은 그 어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성을 지녔다. 그렇기에 모든 삶은 유일무이한 일회적인 고유성의 가치를 지니며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엘가도, 자크 오펜바흐도, 자클린도 자신들의 죽음 뒤로 본인이 새겨낸 음악의 흔적들이 또 다른 의미로 세상에 퍼지게 되리라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의 삶 속에서 빚어낸 예술의 정수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삶의 무언가를 자신의 가시밭에서 음악의 꽃으로 표현해 내는 음악가들에게 깊은 감사함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Ars Lunga Vita Brevis.







참고될 만한 영상을 링크로 첨부드립니다. :)

좋은 밤, 편안한 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자클린 일생을 다룬 AllegroFilms채널의 헌정 영상


2.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이야기. 


3. 1980년도의 자클린의 인터뷰영상







『 수요일의 슬픈 Bittersweet 』 10편 - 자클린의 눈물이 새겨 준 푼크툼의 순간, 엘가 첼로협주곡 e단조 op.85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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