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찾아뵙는 윤슬의 라디오입니다.
11월 초부터 아티스트들의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음원들이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 계절이 주는 음악을 미리 선보이기 위해서, 창작자들은 최소한 한두 계절을 앞서 작업을 완료해야 하지 않을까요? 캐럴 음악은 보통 11월 중에 발매되고, 그러려면 음악 작업은 최소 봄이나 여름엔 해야 할 것 같아요. 출시 막바지엔 발매에 관련된 여러 일들에 치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 계절이나 장소를 경험하며 느끼는 감성들을 오롯이 담고 싶다면 그때 그 시절에 맞춰 스케치 작업을 해두고 틈틈이 만들어서 다른 해의 계절에 맞춰서 내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단 생각을 초보 창작자의 입장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튼 전 11월부터 캐럴을 듣고 싶진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깊은 가을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잎이 많이 떨어진 숲이 햇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때도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늦가을과 겨울의 숲 산책이 좋은 이유입니다. 나무는 그런 햇빛의 온기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생명을 추위 속에서 빛으로 지켜내며 다음 봄을 준비할 거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가을엔 어떤 곡을 즐겨 들으시나요?
저는 애수에 젖은 현악기 음악, 어쿠스틱 기타, 챗 베이커의 음악들을 듣지 않고서 12월의 캐럴로 넘어간다는 것은 계절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마저 줍니다. 올가을은 저 음악들을 다 챙겨 듣진 못했지만, 제일 많이 들었던 음악은 번스타인이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한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G장조 M.83 2악장이었어요. 깊은 가을 정취에 맞는 음악들을 소개해 드리는 건 다음 해를 기약하며, 오늘은 11월에 나온 신곡 위주로 편하게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https://youtu.be/PsgXGkqx8Ds?si=xfvYypYgSsMf6Vn4
라우브(Lauv)가 자신의 히트곡인 Love U Like That을 한국어 버전으로 음원을 발표했습니다.
지난여름 첫 단독 내한공연이 열렸고 당시 한국 팬들이 보여준 사랑에 크게 감동받았다고 해요.
당시 공연 영상을 보니 정말 팬들의 사랑 속에서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라우브의 목소리를 학습한 AI 기술로 한국어 버전 음원을 만들었다고 해요. 어쩐지 외국인치고 한국어 발음이 자연스러워서 놀랐는데 AI 모델링 기술을 활용한 거였다니 신기했습니다. 음악시장 다양한 분야에 AI 기술이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믹싱&마스터링을 하는 플러그인에서도 요즘 AI 기술을 활용한 플러그인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UNo0TG9LwwI?si=RWjRZD-LDAv1Un3O
정국의 솔로 앨범 Golden이 출시되었습니다.
BTS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이클 잭슨의 후계자로까지 언급되고 있는 그 눈부신 성장과 변하는 모습에 기대가 됩니다. 강렬한 비트, 시원한 브라스, 정국의 보컬, 사운드 밸런스도 참 좋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렇게 매끄럽고 시원한 음질을 구현할 수 있는 걸까요? 이 앨범에서 두 곡을 골랐습니다.
Standing Next to You 이 곡은 현재 (2023.11.30 기준) 빌보드 앨범 차트 16위, 빌보드 Hot 100 73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Hate you는 애수에 젖은 분위기가 좋았는데, 더불어 joji의 발라드 곡들도 함께 떠올랐어요.
https://youtu.be/D1cEMLGvAQk?si=yyLHxEauWdwzAamk
https://youtu.be/suAR1PYFNYA?si=Jze7KtZ3vaLo77Xb
Dua Lipa의 신곡 Houdini입니다. 경쾌하면서 감각적인 타악리듬과 그녀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곡인데, 햇빛 받으며 산책하는 시간 중 힘차게 걸을 때 들으면 좋을 곡입니다.
https://youtu.be/vx4kLgnFexo?si=WK-olbc2KVHXA05W
영화 '애프터 양'에서 glide를 불렀던 가수의 신곡입니다.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매력적입니다.
https://blog.naver.com/minamusic/222761912122
https://youtu.be/lXmqrhPF8fQ?si=iDHhprcXBRkepNsp
원사임 님의 신곡 '귤'입니다. 이 곡도 캐럴곡 못지않게, 겨울이란 계절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곡이지 않나요? 지금까지 내오신 음악과는 분위기를 조금 달리하여, 밝고 경쾌한 가사와 음색, 코러스, 피아노의 경쾌한 컴핑이 매우 유쾌합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즐겁게 걸어가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막내 아이가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흥얼흥얼 하곤 하네요. :)
https://youtu.be/xrxxALETANY?si=uXeqnBv3RkbqweQm
딘의 목소리와 기타로 시작하는 이 곡도 11월과 잘 어울립니다. 딘의 목소리는 참으로 달콤합니다.
https://youtu.be/0vjfaHJcE_I?si=8BapqmW36QMCxXWy
올해 신곡은 아니지만, 작년 11월의 신곡 진푸른새미님의 Paris en Novembre으로 차분하게 마무리할까 합니다.
진푸른새미의 [Paris en novembre]는 그녀가 겪어 온 파리를 담은 곡이다. 유독 11월의 파리가 힘들었다던 그녀는 파리의 삶이 마냥 순탄하지 않았고 도망치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의 평안이 존재했던 때가 있었다고 곡에서 말하고 있다. 그녀의 파리 삶을 솔직 담백하게 담아낸 이 곡은 포기할 용기가 없어서 냉혹한 현실을 견뎌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결국 우리에겐 포기할 용기가 없었기에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쓸쓸한 마음이 느껴졌던 곡입니다. 미디 작업으로 참여하여 조금 도움을 드렸던 곡인데, 당시 마감시간 맞춰 밤새 졸면서 스트링 선율 한음 한음 모듈레이션 선을 그리면서도 그 자체가 좋았던, 행복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
지난 10월 초 어느 날 산책길에 낙엽을 발견했습니다. 지나칠뻔했는데 다시 발길을 돌려와서 보니 쏟아지는 계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나뭇잎들을 보며 썼던 가을의 단상을 올리며 오늘의 글과 음악을 마칩니다.
12월이 되면 캐럴이 더 많이 들리겠죠? 눈발이 두어 번 날리긴 했지만 아직, 아직요. 오늘까지만.
늦가을의 정취를 더 담고 싶은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 가을의 문턱에서 >
초록을 놓아도 아름답다니
푸름을 잃어도 아름답다니
잎을 떨구려 제 몸에 노랗고 붉게 빛을 내다니
내려놓음이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의 빛깔로 정의되다니
세상에 떨궈진 잎이 제 몸을 땅에 뉘이면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바스락바스락 가을의 소리가 되어주다니
바람과 노닐면 낙엽의 눈보라도 되어주다니
제 옷을 벗으니 드러난 나뭇가지 사이로
조건 없이 늘 나누어 주는 햇빛이 들어차
숲 속을 환한 태양빛으로 채울 수 있다니
차가운 공기를 뚫고 들어온 햇빛이
흙을 포근하게 품어주어
나무는 태양의 다정함으로 혹독한 추위를 견딜 거라니
스스로 다음 생을 살아내려는 몸부림마저 이토록 아름답다니
그로써 제일 중요한 걸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니
그렇게 다음 생의 봄을 꽃피워낼 수 있다니
아랑곳없이
삶을
생명을
자연은
늘 스스로 아름답게 제 몸을 일깨워
모든 존재에게 늘 한결같은 고향의 품을 안겨주다니
불멸을 향한 탄생부터 소멸까지의 일체 모든 순환이
이토록 완전하고 아름답다니
가을의 문턱은 열리고
붉게 타오를 가을이 기대되나니
하얗게 채워질 겨울이 설레옵나니
심장의 숨결에 마음을 기대어보는
10월의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