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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4. 2024

빈티지한 현악기 소리에 매료된 헨델 할보르센 파사칼리아

헨델-할보르센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파사칼리아


빈티지한 현악기 소리에 매료된 파사칼리아

지난 11월 어느 주말 아침, 아이를 내려주고 운전해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디오를 켜니 흐르는 음악. 익숙한 멜로디가 귀를 사로잡는다.


‘ 아... 빈티지한 바이올린 소리 너무 좋다. ‘ 슬픈 선율에 화려한 기교가 아름답고 유려하게 더해진다.  볼륨을 더 더 올렸다. 


곡의 절정 부분에 다다르자 제일 높은음으로 치달으며 내리꽂는 슬픈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율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온전히 몰입되는 시간의 파도 위에 영혼을 오롯이 내 던지는 이런 순간이 좋다.  음악이 만드는 시간의 마법이다.


 ‘ 분명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 

곡이 끝나자 DJ가 말해 준 그 이름은 바로,

역시, 아이작 펄만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귀에 익숙한 곡이지만 곡제목을 몰랐고, 처음 들어보는 연주의 음원이었다.  


헨델의 파사칼리아 g단조.

핀커스 주커만의 비올라와 함께 76년도에 한 연주라고 소개해 주었다. 


https://youtu.be/wAHjHFjcPUg?si=19P98KAwitYwMHNj


집에 들어오자마자 오디오를 켜서 반복해서 들었다. 

‘ 아, 이 곡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되어줄 수 있겠다 ‘

라는 확고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음원을 플레이리스트에 담고 imslp사이트에 들어가서 악보를 출력했다. 


아래에 악보를 첨부합니다




악보가 3장이다. 응? 너무 적은데?

응?? 피아노 악보인데?

이 선율 맞지만 아닌데? 이상하다..


다시 선곡표로 달려갔다. 

제목 안에 정답이 있었다. 

헨델의 풀네임이 조금 기네? 하고 말았는데 역시 급한 마음에 대충 보았던 것이다.


George Frideric Handel; Johan Halvorsen - Passacaglia

--> Johan Halvorsen !!!


할보르센이 헨델의 파사칼리아를 편곡해서 낸 것이 바로 이 곡이었던 것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로 활동했다. 


(1864-1935)



원곡 : George Frideric Handel - Passacaglia in G Minor, HWV 432/6 

편곡 : Handel-Halvorsen : Passacaglia (violin & viola)


다시 imslp로 달려가서 할보르센의 이름을 넣고 편곡 버전의 악보를 검색했다.

찾았다!!


아래에 악보를 첨부합니다



78년 런던에서의 공연실황 영상

https://youtu.be/PwWVf9Y525o?si=r9jCYUYV0LQuwcdf&t=2336


Live recording from Royal College of Music, London (1978)

Itzhak Perlman - violin

Pinchas Zukerman - viola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서 봤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완벽한 조화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름답게 연주하는 아이작 펄만과 주커만의 모습이 너무 황홀했다. 

그렇게 영상과 음원을 들으며 악보에 기보 된 것들을 보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현악기 주법공부 영상이 될 거란 확신이 생겼다. 현악기 주법이 아직 내 것으로 확실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건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이래서 좋아하는 곡을 붙들고 공부하라는 거구나!  



작곡가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

작곡시기 : 1720년

원곡 제목 : Passacaglia in G Minor, HWV 432/6 


편곡가 : 요한 할보르센(Johan Halvorsen, 1864~1935)

편곡제목 : Handel; Halvorsen - Passacaglia

헨델의 <건반모음곡 7번> 중에서 6악장인 파사칼리아만을 편곡한 것.

     ( '서곡: 라르고’,  ‘안단테’,  ‘알레그로’,  ‘사라방드’,  ‘지그’,  ‘파사칼리아’ )

편곡시기 : 1893년

출판  1896년, 코펜하겐





깨닫기 하나!

파사칼리아는 무슨 뜻일까?



" 파사칼리아(Passacaglia)는 17세기 초기에 스페인에서 발생한 춤곡으로 그 후에 프랑스에서도 발레곡으로 사용되다가 점점 무도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악곡으로 발달하여, 샤콘느와 더불어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변주곡이 되었다. 느린 3박자의 춤곡으로 바흐, 슈만, 브람스의 명곡이 있다.


파사칼리아는 16세기 중엽에 유행한 파사칼레(pasacalle)라는 2박자계, 4∼8마디의 행진곡이 무곡이 된 것이다. 3박자 8마디 구조의 저음주제를 똑같이 반복하면서 고음부에서는 대위법적인 변주를 전개해 나가는 형식이다. 파사칼리아가 곡 전체를 통해 짧은 주제를 고집저음(固執低音)으로 반복하고 있는 변주곡인 데에서 파사칼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박자는 무곡이 되면서 느린 3박자계로 바뀌었다. J.S. 바흐의 작품(BWV 582)이 범례로서 특히 유명하며, 브람스의 제4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20세기에 들어서는 베베른의 작품 등도 그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


- from wiki



춤곡은 옛 클래식의 태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서이다. 그래서 흔히 왈츠라고 부르는 클래식 용어들이 참 많은데, 언젠가 한번 이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발행했던 음악글 안에서도 비탈리 샤콘느, 류이치 사카모토의 사라방드,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까지. 모두 춤곡 형식 용어였던 것이다. 

춤곡에서 시작하여 점점 기악곡형태로 세분화하여 변형, 발전되었다. 






깨닫기 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엣 곡 특징



순간순간 쿼텟 구성 같으면서도 음색은 쿼텟 사운드가 아니라고 느낀 이유를 악보 안에서 발견했다. 

중음주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4개의 화음을 동시에 연속적으로(수직적인 채 수평적으로) 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만이 낼 수 있는 음색과 음역대를 최대한 활용하여 스트링의 표현력을 높이려다 보니, 쓸 수 있는 주법을 더 다양하게 최대한으로 활용한 듯 보였다.

첼로까지 있었으면 더 쉽게 음역대를 풍부하게 확장할 수 있었을 테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만 사용함으로써 그 악기 자체가 주는 음색과 음역대를 활용해 기술적으로 다양하고 어려운 주법도 깊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부하기에 좋은 곡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고도로 치밀하게 두 대의 현악기가 물리고 맞물려서 하나로 어우러지는데, 이것 역시 갈고 닦여진 기술적인 것에 감성이 조화를 잘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https://youtu.be/CP9RoYfU1hM?si=HBGHVMpEaQcCbX3j

이 연주는 챔버 규모의 편곡 연주이다. 확실히 음색적으로 풍부함이 살아있다.




깨닫기 셋! 

내가 바로 개방현이다.



주커만이 비올라로 엔딩음을 내는 모습이다.   

어? 연주자가 운지하는 왼손을 놓는다? 


이게 바로 개방현이다.

음을 손가락으로 현을 운지하지 않아도 줄 자체에서 나는 계이름이 솔, 레, 라, 미인데 그중에서 솔과 레가 활만으로 연주되고 있다. 마치 아 곡이 끝났음을 시원하게 알려주기라도 하듯, 왼손을 떼서 퍼포먼스 하는 주커만의 위트 있는 동작이 재밌다.




깨닫기 넷!

어? 악보와 다른데? 기보에 매몰되지 않는 재해석!



악보에 모든 용어에 대한 뜻을 적고 악상기호에 따른 소리의 변화에 집중하며 반복해서 영상과 악보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속 시원한 쾌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악보와 다르게 연주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https://youtu.be/PwWVf9Y525o?si=30I5DcD5TPBsi-kg&t=2423




29마디에서 32마디까지 피지카토로 표기되어 있는데 검지로 현을 뜯고 다시 아르코 활로 돌아가기가 반복 기보되어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봐도 음원을 들어도 그 부분은 피지카토가 아니었다. 스피카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악보를 해석하는 것이 보통 1, 2 부류로 갈라지는데 그게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아주 옛날 작곡된 자필악보에 기보표시가 잘 안 보일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정도 변형해서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의 재해석으로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악보에만 머리를 콕 욱여넣고 있다 보니 더 큰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악보에 충실한 연주를 공부차원에서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영상을 추천하고, 감상차원의 연주라면 당연 아이작펄만의 연주를 추천한다. 대화를 편하게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관련대화를 있는 그대로 올려본다.



https://youtu.be/nnOoAnLL7vY?si=w3eGOdP1NhgTXjNj

악보와 거의 일치하는 연주로 공부하고 싶으시다면 이 영상을 추천드립니다. ( 중간에 4마디 빠진 부분, 가장 절정음 ffz를 악보완 다르게 다운보 업보 두 활로 표현한 것은 제외)




깨닫기 다섯! 

삶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유머!



아이작 펄만을 좋아하는 이유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소아마비를 눈물겨운 투지로 극복하여 천재적인 직관력으로 담아내는 연주로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이작 펄만의 부드럽고 배려심 깊은 유머!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자료를 찾다 보면 아이작 펄만의 무대 뒤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특히 공연이나 레코딩 전에 연주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데, 항상 유머러스하게 편하고 다정하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다소 재밌고 엉뚱한 연주를 제안해서 이끈다거나, 다양한 악기로 익살스러운 시도를 한다던가. 그렇게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풀려는 그만의 다정한 이끎이 있다. 아이작 펄만이 있는 곳엔 사람들의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 아래 영상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https://youtu.be/vFw-zDkD3Gs?si=gFmubJCnytCLtM3d




작년 에머슨 스트링 쿼텟의 은퇴연주회에 갔을 때 마스터 클래스를 참관한 적이 있는데, 당시 쿼텟을 잘 이끌어가는 비결 3가지를 말해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머러스’라고 했다. 


‘Sensitive humor in any relationship’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을 때 항상 재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친구, 학생들하고 말할 때조차도 유머는 모든 걸 원활하게 돌아가게 해 주는 요소이다. 즐겨라.라고!!










지난 늦가을, 한 동안 이 악보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이 음원을 수십 번을 들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주법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나의 것이 되어서 뿌듯했다. 개념을 좀 내 것으로 소화시킨 정도이지, 이것을 작편곡가의 관점으로 의도에 맞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아직 멀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곡’을 공부하며 바로 지금, 여기부터 그 여정이 시작되는 첫 출발점임을 잊지 말고 주기적으로 꾸준히 보자고 결심했다.


이 곡을 통하여 나의 선호하는 취향을 다시 인지할 수 있었다. 확실히 챔버나 심포니 규모의 현악연주보다, 솔로 현악기가 내는 음색을 사랑한다. 그 순간이 강렬했었는지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면 오롯이 그날의 그 순간으로 날 데려다준다. 운전했던 길, 햇빛이 내려쬐었던 방향과 느낌, 잠이 덜 깼던 아침시간을 뒤집듯 퍼부었던 파고의 시간,  그때 마음으로 느꼈던 감정들까지. 음악은 참으로 신기하다. 



ⓒ bilanol , FabrikaPhoto from envato



헨델이 건반모음곡을 작곡한 지 170년 후, 헨델이 서거한 지 120년이 지난 후에, 할보르센이 편곡했다. 수많은 연주 중에서 아이작펄만과 주커만이 함께 한 연주는 할보르센이 편곡한 지 80여 년 만에 녹음되었다. 나는 그 연주를 50여 년이 흐른 뒤 라디오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헨델이 작곡한 시기부터 계산해 보면 대략 3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음악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속성있게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파사칼리아의 선율을 모티브로 차분한 스케치곡을 하나 작곡하여 녹음했다. 마지막으로 그 곡을 공유하며 오늘의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이야기 비터스위트를 여기서 마친다.



https://youtu.be/TAooAKTt9U0?si=3awUTUAm8euI0DgV








+ 240117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 마지막회 중요한 장면에서 이 음악이 쓰였다고 합니다. 

아침에 라디오를 켰는데, 이 곡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연주가의 연주였는데 낯설어서 93,9Mhz채널로 돌렸더니 이내 거기도 같은 곡이 흘러나왔어요. 리차드 용재오닐의 연주였는데 정적인 레가토가 매력이었던 그만의 연주도 역시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제겐 아이작 펄만과 핀커스 주커만의 연주가 저만의 레퍼런스로 깊이 각인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같은 곡이지만 완전히 다른 곡입니다. 누가 물어보더라도 난 이 연주를 추천해 줄 거예요. 

그나저나 이 곡이 정말 화제가 되고 있나 봅니다. 최근 블로그 관련 검색 유입이 늘어난데다가, 같은 시간대 같은 클래식 채널에서 같은 곡 다른 버전이 신청곡으로 한 날에 나오다니 말이죠. 



93.1 & 93.9 파사칼리아 선곡표




여기서 신기한 연결고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 음원 중 '늪(Into the Darkness)'이라는 곡이 있어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이루어진 슬픈 춤곡인데요. 그 바이올린 연주를 해 주신 박진희 선생님께서 이번 마에스트라 드라마를 위해 1년 전부터 이영애 배우님의 바이올린 레슨을 전담해 주셨다고 합니다. 정말 열심히 배우셨다고 해요. 게다가 이 파사칼리아 곡을 그 드라마의 엔딩곡으로 직접 추천하셨고 최종적으로 곡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작년 늦가을 이 곡을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어요. 역시 현악기 솔로 색채를 좋아함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늪을 녹음하고 믹싱 마스터링 하는 과정에서 현악기 솔로 색채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려봤습니다. 며칠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연주자 분과 이 곡과의 연결고리가 신기하고 재밌어서 파사칼리아 에피소드를 전하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렇게 음악으로 영혼이 통하는 기분일 땐 참으로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영애 님의 마에스트라 헨델 파사칼리아 연주 영상과 저의 곡 <늪(Into the Darkness)>을 공유해 봅니다. 들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5ShBDh65Mfo&t=395s


https://youtu.be/HUuRkCD-Z_I?si=4VsKuAXeOSx8SDqC






『 슬프고 아름다운 Bittersweet 』14편 - 빈티지한 현악기 소리에 매료된 파사칼리아였습니다. Imslp에서 받은 헨델의 파사칼리아 악보와,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악보 2개를 첨부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나눕니다. 그저 알고 싶고, 깊게 느껴지는 것을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저만의 시선으로 편하게 담아봅니다.

※ 사진,영상에 관한 저작물은 라이센스가 승인된 서비스를 이용하여 업로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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