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시와 음악의 일부는 고난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존재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나온다.
- 마이클 싱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
베토벤은 쉴러의 시를 읽고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했다. 많은 작곡가들은 시에 영감을 받는다. 좋아하는 뢰이베이 Laufey의 최근 정규앨범도 릴케의 시집을 읽고 영감 받으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고전음악 악보들을 보다 보면 제일 앞부분에 바치는 대상의 이름(왕, 귀족의 이름이 화려한 글씨체로 담겨있다)이나, 시구절이나 글이 쓰여 있다. 요즘으로 치면 '앨범소개'에 창작자의 생각을 담는 것과 비슷하다.
시는 운율이 있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인해 선율에 잘 어우러진다. 그것이 오늘날 수많은 음악들의 작사로 연결된다. 작사가는 곧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직접적인 표현이므로 간접적인 선율이나 화성 악기들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다. 게다가 힙합을 하는 래퍼들을 음유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일단 말이 빠르니 대중음악 장르 중에선 제일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더 직접적이고 자세하게 담을 수 있다.
좋은 선율, 가사, 그것을 잘 표현하는 목소리. 이 3가지만 잘 표현된다면 곡의 90%는 이미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써오는 동안, 내가 바란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날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 천서봉, 『서봉 씨의 가방』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첫 눈빛 세례를 받은 바닷속
풍경 하나가 반짝, 반응할 때
세상이 드디어 어린 영혼의
외로움까지 감싸 안으며 더욱 짙어지는,
한 생명이 자기 안의 어둠과 대면하는 바로 그 순간
- 배영옥, 『시』
"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오직 음악만이 날 붙잡았다. 내가 만들어야 할 음악을 전부 다 만들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으니까. "
베토벤은 쉴러의 시에 영감 받아 합창 교향곡으로 스스로 노래했다.
귀족의 음악이었던 오페라. 베토벤은 오페라 피델리오를 쓰며 좌절했다. 계급문제 때문이다. 그 이후 평생 누구를 위한 희극에 동참할 수 없다며 오페라를 쓰지 않고 그 이후 오라토리오만 썼다.
왜 그럴까 시대상을 한번 펼쳐보니 베토벤이 스무살이 되던 해, 프랑스혁명이 있었다. 쉴러의 시는 프랑스혁명 전에 쓰여졌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처럼 다시 원래의 취지와 어긋나고 부패하는 권력, 그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의 참 모습 또한 변하는 것을 보며 베토벤의 마음은 거칠게 저항하고 안타까워 했을 것이다.
오페라는 희극의 음악, 특정 대상들에게 바치는 음악이었지만 오라토리오는 다르다. (오라토리오 Oratorio : 성경 등 종교적인 내용의 이야기를 극화하여 교회나 음악회장에서 연주하는 대규모 악곡기도)
작곡가가 선택한 문장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부분에 선율을 넣고 구성해서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휘자 구자범은 베토벤의 합창은 오라토리오에 가까운 음악이라고 말한다.
시를 붙들고 작곡을 시작했던 때
작곡을 처음 시작할 무렵, 대체 어떻게 작곡을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물론 여전히 어렵고, 잘 모르겠다. 손끝에서 나오는 선율은 진부하고 심심하며 패턴도 비슷했다. 정서와 감정을 끌어오기가 참 힘들었다.
'가사라도 있으면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선율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시집을 잔뜩 빌려와서는 피아노 악보대에 시집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읽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이야기를 상상했다. 운율 하나하나에 피아노 음을 넣으며 습작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선율이 한결 편하게 담아지는 경험을 했었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작곡과 전공수업에서 시를 보며 작곡하는 수업이 있다고 한다.
조혜영 작곡가는 시를 수천 편씩 읽으며 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작곡에 그 사랑의 슬픈 정서를 담는다고 하셨다. 앞서 말한 베토벤 역시 프랑스혁명 전 쉴러가 20대 중반 때에 술집에서 쓴 시에 영감 받아 여러 고난 속에서 불후의 명곡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해 냈다.
시와 그림으로 평생우정을 나눴던 겸재정선과 이방연이 있다. ‘진경산수화’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진 겸재정선. 좋은 그림에 좋은 시를 더하려는 문인들의 열망이 컸던 시절, 당시 그림에 기행시가 더해진 것이 크게 유행했었다. 스스로 깨달은 것을 표현하는 ‘참된 시’가 문예인들 사이에서 강조되었는데, 겸재정선의 대표적 화풍의 진경산수화 ‘진경’이란 뜻 역시 사실적인 묘사위에, 참 진 眞. 그 사물과 풍경의 본질을 보며 마음으로 깨달은 바를 더해 표현하는 것이라고 문화해설사가 설명해 주셨다. 눈앞의 사실적 풍경을 보지만 마음으로 깨달은 바를 더하여 표현한다는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
나의 시와 그대의 그림을 바꾸어
함께 보자면
가볍든 무겁든 무슨 말로
가치의 차이를 말하리오?
시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에서 나오니
어느 것이 쉽고 어느 것이 어려운가도
모를 일이지요
"
함축적이고 절제된 은유의 말도, 거칠어서 더 와닿는 날것의 말도, 그렇게 심장을 울리는 시가 된 언어는 곧 가사(랩)가 되어 선율을 타고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 된다.‘진경’처럼 그 화자만이 담을 수 있는 참 진 眞이 담긴 것들은 늘 아름답게 빛난다. 시가 그림으로, 시가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런 순간들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게 시와 음악, 그림, 건축 등 예술은 세상에 그만의 말을 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시공간을 선사하며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달래주고 고양시킨다. 공감하는 그 자체이다. 시와 음악이, 미술과 음악이 예술로서 함께 어울리는 순간들을 누리고 싶다.
앞으로 시와 음악에서는, 좋은 시에 습작을 더하거나, 시가 음악이 된 곡들을 자유롭게 소개하려고 한다. 시를 작곡한 합창곡이든, 랩이든, 가곡이든, 장르 등등 상관없이 말이다. 아름다운 시와 가사가 많이 닿기를 바라며 끝으로 피아노곡과, 힙합 랩 두 곡을 '시인'의 관점으로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존 헨리 맥케이의 시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독일의 가곡 Morgen!(내일!)이다.
작곡가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1864~1949)
작곡시기 : 1894년
작사가: 존 헨리 맥케이 John Henry Mackay
결혼선물로 아내에게 헌정한 4개의 리트(가곡)중 마지막 4번째 곡 (Op.27 No.4)이 ‘Morgen!(내일!)'이다. 좋아하는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의 음성도 있고 작곡가가 직접 편곡한 오케스트라 버전도 있지만, 오늘은 고요한 피아노곡으로 소개하고 싶다.
" 프랑스 몰도바계 피아니스트 알리사 조브릿스키 Alisssa Zoubritski는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14개의 가곡을 피아노 편곡으로 선보인다. 이번 음반에선 색다른 편곡을 시도하여, 가곡의 가사를 피아노 선율로 담아냈다." - applemusic
https://youtu.be/C2iPpTRB_6I?si=bUY8AXxSyhBfefgN
Und morgen wird die Sonne wieder scheinen
Und auf dem Wege, den ich gehen werde
Wird uns, die Glücklichen, sie wieder einen
Inmitten dieser sonnenatmenden Erde
Und zu dem Strand, dem weiten, wogenblauen
Werden wir still und langsam niedersteigen
Stumm werden wir uns in die Augen schauen
Und auf uns sinkt des Glückes stummes Schweigen
Tomorrow!
Tomorrow again will shine the sun
And on my sunlit path of earth
Unite us again, as it has done,
And give our bliss another birth...
The spacious beach under wave-blue skies
We'll reach by descending soft and slow,
And mutely gaze in each other's eyes,
As over us rapture's great hush will flow.
두 개의 분열된 자아 속에서 서로를 남처럼 바라보는 NF. 그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자신의 내면을 대면하며 평생 시달려온 스스로의 틀을 깨어나가는 의지가 강렬하게 돋보인다. 이 곡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자아를 수용하고 통합한 NF의 '참 진 眞인 Hope'에서 그만의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통렬한 반짝거림이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시를 작곡한 음악은 아니어도 그만의 이야기를 담아낸 참 진 眞의 가사야말로 곧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https://youtu.be/pHLiuM6AEes?si=_3lvn43BjeDDTbNE
https://youtu.be/1SRuK8icziQ?si=j5XHuq3ANkBY_Z7J
참고영상,문헌 : EBS 정경의 클래식:수요 초대석 조혜영 인터뷰, 월간객석, 구자범블로그, 위키피디아, 명곡해설집, 마이클 싱어<상처받지 않는 영혼>, 문학동네 시인선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