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 자락 덮어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
- 도종환, <홍매화>
작년 가을, 전지은 작곡가님께서 보내주신 도종환 님의 <홍매화>라는 시입니다.
꽃이라면 응당 봄에 핀다고 생각하지만, 홍매화는 하얗디 하얀 눈 속에서도 빨갛게 피는 꽃이기에 우리네 가슴속에 더 깊게 더 시리게 피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가슴속에서 들끓는 붉은 심장처럼 말이죠. 하지만 홍매화는 그저 자기의 운명대로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들의 시선으로 홍매화를 바라보며 겨울과 봄, 하얀 눈꽃에 핀 빨간 꽃의(雪中梅) 간극을 느끼지요. 그 심상의 대비만큼 저마다의 지극한 그리움을 그 속에 묻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매화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홍매화는 열아홉 살 바람난 가시나 같지요. 2월에 추운 줄도 모르고 피여. 한껏 뽐내는 게 딱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도 하고예. 그래도 새벽 찬 공기에 제일 먼저 그 조그만 꽃봉오리를 터뜨린 걸 보면 반가운 마음도 들고, 애틋함에 눈물도 나뿌리고… 머슴처럼 일하다 매화 보며 한참 혼잣말 씨부렁거리다 보면 마음속 찌꺼기가 다 녹아 저기 저 섬진강 물 따라 씻겨 내려가는 것 같지요. 그래서 매화꽃은 내 얘기 들어주는 딸 같고, 매실은 아들 같다 안 합니꺼~.”
한파 뚫고 꽃망울 터뜨린 홍매화… “광양으로 봄마중 오이소” 기사 중에서, 조선일보 박근희
쉰여덟 번째 매화나무 아래에서 봄을 맞이한다는 청매실농원 주인 홍쌍리(81)님께서 2월 중순에 서둘러 핀 홍매화를 보며 하신 말씀에 홍매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시가 주는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전달하고, 위의 기사링크도 보내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홍매화 곡에 잘 어울릴만한 시 한 편도 슬쩍 보내보고.. 그래서 이 곡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작곡가 곁에 함께 머물며 곡의 정서를 나누고, 도움이 될 만한 심상을 공유하고, 피드백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곁에서 응원하며 걸어갔기 때문인데요. 다행히 전지은 작곡가님께서 마음을 열어 사랑으로 받아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과정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내 삶을 행복하게 채우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게다가 최종적으로 이 곡이 올해 초 공모전에서 당선까지 되었으니 더욱더 기쁘게 축하해 주었습니다. 시에 자신의 선율을 붙인 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닐 텐데, 음악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요.
https://youtu.be/ERLgwUMF-9w?si=xPbYwL8akvaAQ7ld
지난 3월 15일에 나주시립합창단에 의해서 초연되었습니다. 슬프지만 늘 따뜻함을 잃지 않는 곡을 담는 전지은 작곡가님께서 앞으로도 심금을 울리는 곡들을 많이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해설을 전하며, 주말의 끝을 담아봅니다. 돌아오는 한 주도 행복하고 평안한 한 주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차가운 겨울 끝 눈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 있는 꽃, 홍매화. 겨울이 끝난다 말해주고, 봄의 시작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기도 합니다. 외로운 현실 속의 숨길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한 이 시에서, 차가운 눈의 흰색과 그리움을 드리운 홍매화의 빨간색은 서로 대비됩니다. 색과 온도의 대비를 위해 곡 초반에는 피아노의 텐션과 선율로 쓸쓸함과 차가움을 그렸고, 곡의 절정으로 갈수록 내성의 움직임과 선율, 화성, 피아노의 아르페지오로 절절하고 뜨거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홍매화는 마치 가슴속에서 강하고 뜨겁게 뛰는 심장 같지만, 해결되지 못한 그리운 마음을 곡 마지막에 고요한 여운으로 담아내며 끝이 납니다. "
https://www.youtube.com/@composerji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