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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4. 2024

결핍과 상처를 끌어안는 순간 - 신부님의 노래

Stephan Moccio - Nineteen Years


박자와 음정이 하염없이 어긋나는 아름다운 성가를 들었다. 평생 자신을 억누르던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어 숨을 되찾았다는 신부님의 노래는, 한계가 없어 강인했고, 용기가 있어 아름다웠다.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껴안고 두려움에서 당당히 걸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내 곧 아름답다, 찬란하다고 느끼며 심장이 저릿해왔다. 이것이 실체로 증거하는 사랑의 실존이자 현존이구나. 수많은 신자들이 침묵의 기도로 참회와 구원의 무릎을 바친 성전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차마 눈물을 훔치지도 못한 채, 하느님의 손수건은 빛으로 와 있었다.



“ 저는 두려움에서 나와서 지옥 같지 않고 숨을 쉴 수 있습니다. “ 



양주순교성지의 마르코 신부님의 말씀이다.

신부님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르셨다고 한다. 그러자 선생님과 친구들까지 모두 웃으며 난리가 났고 친구들은 놀리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 이후 단 한 번도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노래 부르기는 평생 자신을 괴롭히고 억누르는 두려움이었다고 고백하셨다. 신부님이 되신 후엔 최대한 노래를 줄여 미사를 하셨지만, 코로나 이후 매일 미사를 유튜브로 생중계하기 시작하면서 결심하고 변화하셨다고 한다. 이제는 그 두려움에서 나와 나의 숨을 되찾았다고 하시며 좋아하는 성가를 직접 불러주신 것이다.


숨이 채워진 음성이, 스스로를 사랑으로 채운 음성이 성전에 울려퍼졌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진짜 인간미를 느꼈다. 불완전한 음성일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는 사랑의 순간이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을 끌어안고 극복하는 모습을, 사랑의 현존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는 상처를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고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상처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은 상처가 없이도 잘 자랐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상처없이 지켜주고 싶다.

심지어 그대 전혀 성장하지 못한대도 상관없다.


- 이상, 연인이었던 금홍에게 쓴 편지 중에서


삶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산다. 그럼에도 이상이 금홍을 지켜주고 싶었던 그 마음과 같이, 하느님은 마르코 신부님을 빛으로 사랑으로 상처를 끌어안아 주셨다고 생각했다.



습관처럼 되뇌이지 않기를

미사는 형식적인 틀 안에서 반복하는 기도문이 대부분 정해져 있기 때문에 때론 분심이 들어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채로도 입으로 되뇔 수도 있다.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진정한 기도가 아니지만 말이다.

미사를 집행하시며 낭독하시는 마르코 신부님의 음성은 낯설고도 눈부셨다.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과 영을 실어 그 의미를 천천히 아로새겨주셨다. 아니, 내가 평소에 늘 외는 기도문과 같은 것인가? 싶었다. 그 의미를 새겨듣다가 기도문을 몇 번이나 놓쳐버렸다. 분심이 들 때면 생각 없이 되뇌었을지도 몰랐을 내 기도문을 모조리 해체해 버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현존하며

요즘은 기도문 뿐만 아니라 오르간 반주를 할 때에도 그 순간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려고 더 노력하고 있다.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하는 건 순간이다. 한 음절, 한 음표 마다 의미를 깊게 들여다보며 손으로 울리는 찰나의 순간들이야 말로 나를 이곳에, 현재에 바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은총의 순간이다. 그런 시간을 내게 허락하시고, 봉헌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마르코 신부님이 보여주셨던 따뜻하고 쾌활한 미소를 떠올리며 니체의 <웃음에 관하여>를 떠올려 본다. 모두 단단하고 자연스럽게 미소 지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깊이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웃음을 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불행하고 가장 우울한 동물이 당연히 가장 쾌활한 동물이다.


항상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엄숙함과 함께

그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지곤 한다.


그들에게 “항상 웃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묻고 싶지만

그것은 마치 그들의 심장을 꺼내 보여달라는 말과 다름없는듯하여 입이 잘 안 떨어진다.


그들을 따라 나도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지만

웃는 표정은 늘 어색한 것 같다.


하지만 삶은 슬픔의 긴 시간들과

기쁨의 짧은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을 알기에

삶에서 마주하는 기쁨이라는 건

연못 위에 드문드문 떠 있는 연꽃 같은 것임을 알기에

그래서 웃음이 없다면 슬픔이 우리 자신을 삼켜버릴 것임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웃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들처럼 자연스럽게 미소할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사람들은 웃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웃음은 우울함에 저항하는 인간의 지혜로운 무기로

주변에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


- 프레드리히 니체, <웃음에 관하여>




https://youtu.be/yCzRrSmyNxI?si=aRgCmIMZ4ms71BmC


Stephan Moccio - Nineteen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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