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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1. 2024

푸른 밤하늘을 보며, 가장 깊은 호흡을 담다

결국은, 사랑



어제 저녁산책의 하늘풍경이다. 녹음이 짙어진 나무들 위로 손톱달이 아름답게 떠 있었다. 깊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행복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깊고 푸른색. 금요일인 데다 걷기 좋은 날씨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북적였다. 빗물을 머금은 흙이 내뿜는 내음, 봄의 신록들이 뻗어나가는 초록내음이 한데 어우러진 향기를 깊은 호흡으로 들이마셨다. 비 온 뒤 숲 속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산책하면서 곡 모니터링을 했다. 유독 이번 곡은 미디데스크 앞에서 보다 걸었던 모든 산책길에 함께 한 시간이 절대적이다. 이젠 거의 내 손을 떠난 곡을 들으며 맑고 깊은 푸른 하늘을 보고 걷고 있으니 <가장 깊은 호흡>을 마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오랜 벗을 만났다. 대화 중 작업중인 곡얘기가 나왔다. 더디고 매우 느리게 조금씩 이어가고 있는 이 곡 제목만 듣고 바로 내게 권해준 다큐 <가장 깊은 호흡, The Deepest Breath(2023)>.  프리다이버의 세계를 그린 다큐인데, 앞부분을 보다가 힘들어서 멈췄었다. 그런데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어제 밤 깊고 푸른 밤하늘과 푸른 바다가 연결되면서 기꺼이 다시 보고 싶단 생각이 든 것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프리다이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그들의 목표와 의지, 열망을 잘 조절해야 하는 스포츠이다. 프리다이버를 향한 열정으로 유대를 쌓은 두 사람.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엘레시아와, 영웅적인 셰이프티 다이버인 스티븐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THE DEEPEST BREATH ⓒ Netflix


“ 그때의 정적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어요.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고요한 곳 같아요. “

그 심해의 명상에서 깨어나 수압을 거슬러 70층짜리 빌딩 높이를 수영해서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들의 삶과 꿈.  삶을 내걸고 도전하는 나의 꿈이라니. 꿈도 열정도 모두 삶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꿈 자체가 내 목숨과 직결되는 스포츠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생각해도 답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꿈이 있는 자는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다큐를 다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결국은 사랑인 것이다. 바다에 대한, 프리다이버에 대한 사랑을 업고 뛰어넘은 목숨을 건 사랑까지.

알레시아가 스티븐과 함께 있을 때와 아닐 때의 눈빛과 표정은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눈빛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해서 죽음으로 상대를 지켜주었고, 알레시아는 사랑으로 계속 기록을 갱신하며 스티븐을 기억한다.


괴테 연구가 전영애 노학자의 이야기 - 인생 정원, 일흔둘 여백의 뜰 중에서. ⓒKBS 다큐인사이트

괴테도 말했다. 80년이 넘는 생을 살아오면서 정리한 단순한 삶의 지혜는 "사랑이 살린다”라고. 인생의 결론은 결국 사랑이라고. 세계적인 괴테연구가 전영애 님은 ‘ 사랑은 인간이 생각한 최고의 것에다가 붙인 이름이에요.’라고 하셨다.



요즘은 여러 도움으로 거의 정해진 시간에 잠에 들지만, 어젯밤은 잠들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 그 다큐에 대한 감상을 충분히 나누며 작업 중인 싱글곡을 들려주었다. 사랑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사랑이 느껴진다고 했다. 깊은 고요, 깊은 그리움, 깊은 사랑, 깊은 울림 이 말을 내게 전해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대화를 마친 늦은 밤, 떠오르는 멜로디는 없지만 그냥 바로 피아노 스케치를 녹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가는 대로 흐름을 맡겼다. 피아노는 키스케이프 다크스코어를 써서 물속에서 울리는 듯한 피아노 색채를 선택했다. 신스를 이용하여 수중 속 헤엄치는 다이버들의 모습과 숨을 길게 길게 소리로 이어보고 싶었다. 오늘은 어젯밤 녹음한 8분짜리를 4분 컷으로 잘라내고 틈틈이 편곡해서 빠르게 스케치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 스티븐은 늘 제 마음속에 있을 거예요. 영원히 저와 함께 하는 거예요. 스티븐이 제 곁에 있다고 믿으며 남은 삶을 살아갈 테니까요.”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그 후 23번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알레시아는 자신의 모든 기록을 스티븐에게 바치며 다이버로서 꿈을 펼치고 있다. 

스티븐이 알레시아를 향해 사력을 다해 헤엄치며 올라가는 모습을 아주 오래오래 가슴으로 기억할 것 같다.



https://youtu.be/et_RrzONXk0


가장 깊은 호흡 The Deepest Breath - 최민아 Mina Choi





“내 말을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 칼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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