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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l 19. 2020

마르세유를 그대로 담은 예술 공간

아티스트 레지던스, 르 꾸방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마르세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의 다양한 면면을 떠올리다 결국은 어느 도시에서도 찾을 수 없는 특별한 분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마르세이유만큼 거칠고, 또 자유로운 도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누어지지만, 마르세이유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도시의 자유분방함과 역동성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나 역시 여느 방문객과 마찬가지로 낯선 도시의 조금은 과한 생생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참에 그들에게 어디를 가야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많은 이들이 벨드메Belle de mai라는 동네에 있는 르 꾸방Le Couvent을 소개했다. 수녀원 건물을 개조해 지금은 아티스트 레지던스로 쓰이고 있다는 이곳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이 마르세이유 특유의 자유로움을 만나 빛을 발하는 곳이었다.

르 꾸방의 입구

르 꾸방을 찾기 위해 핸드폰 화면에 뜬 화살표를 따라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문득 청록색으로 칠해진 담벼락을 마주했다. 이곳이 아티스트 레지던스란 것을 바로 알게 해준 것은 노란 벽에 칠해진 청록의 선명함이 아니라 담벼락을 대각선으로 나누어 절반만 색을 입힌 엉뚱함이었다. 커다란 대문 위에는 청록색을 배경으로 수녀원을 뜻하는 ‘르 꾸방’ 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이렇게 발랄한 수녀원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레지던스를 대중에 공개하는 날이었기에 입구에는 긴 줄이 서있었다. 입장료로 2유로를 내면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아티스트들의 작업 공간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들의 작품과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관람은 예배당부터 시작해 수녀원 건물로 이어졌다. 물론 예배당에서는 익숙한 십자가 대신 기괴하게 매달린 사람 모양의 설치작품이 어린이들의 관람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경고문과 함께 관객을 맞이했다. 이런 수녀원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예배당 옆으로 이어진 수녀원 건물은 널따란 정원을 마주하고 있었다. 입구는 알록달록한 새장들이 외벽을 가득 채운 건물의 옆면에 마련되어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장식인지 설치작품인지 애매한 조형물들과 회화작품들이 복도를 따라 줄줄이 걸려 있었다. 좁은 복도를 따라 이어진 작업실은 갤러리로 분해 방문객들을 맞았다. 몇몇 방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각 방문 옆에는 입주한 작가의 이름과 소개가 있었는데 그 분야가 화가부터 시작해 비디오 아티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공연 극단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약 90명에 달하는 입주 작가들은 이곳의 책임과 운영을 맡고 있는 아뜰리에 쥑스타포즈L’atelier Juxtapoz와 1년 단위로 계약해 매달 약간의 이용료를 지불하며 레지던스를 이용한다. 물론 입주하기 위해서는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뜰리에 쥑스타포즈는 지역 예술 활성화를 위한 비영리 단체이다. 2009년 창립한 이후 마르세이유의 곳곳으로 터를 옮기며 아티스트 지원과 전시 기획 사업을 진행하다 2017년 지금의 수녀원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은 제곱미터당 7유로라는 최소한의 이용료를 받고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과 전문적인 작업 시설들을 제공하며 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한다. 또한 100퍼센트 친환경 전기 이용부터 지역주민들과 분리수거 캠페인을 벌이는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한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레지던스로 이어지는 입구
다채롭게 꾸며진 레지던스 내부 복도
다채롭게 꾸며진 레지던스 내부 복도

아뜰리에 쥑스타포즈의 비전은 예술가들의 창의력과 역사 깊은 수녀원을 잘 버무려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켰다. 180년 전에 지어진 수녀원의 내부는 다소 낡고 어두운 느낌이 강했지만 작가들의 손길이 공간에 녹아들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낡은 것이 새로운 것을 지지해주고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보충해주며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건물 곳곳에 드러난 허술한 여백들을 작가들의 재기넘치는 그림과 조형물이 채웠는데, 그 방식이 참으로 자유분방했다. 마르세이유의 그것과 꼭 닮은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었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정원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수녀원 건물을 나서니 바닥에 쌓인 낙엽들의 바랜 색과 아직은 싱그러운 나무들의 푸르름이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정원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 분수대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있었고 또 음료를 판매하는 작은 건물과 닭장도 그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그 사이에서 높이가 맞는 곳이면 어디든 걸터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출입이 제한된 레지던스와는 달리 정원은 대중들에게 항시 공개된다. 지역 주민들을 빼놓고 지역 예술 활성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아뜰리에 쥑스타포즈와 마르세이유 시가 주민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벨드메는 마르세이유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로 악명이 높다. 마르세이유 자체가 범죄의 도시라는 오명을 갖고 있지만 현지인들도 벨드메에서는 특히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이러한 정보를 알 것도 없이 동네의 다소 허름한 외관을 보고 손사래를 치며 부정적인 평가를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시선을 달리 해 벨드메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꾸방과 같은 매력적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항구와 언덕 꼭대기의 성당에서는 만날 수 없는, 마르세이유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벨드메의 꾸방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여느 예술문화공간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역과 긴밀히 연결된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다.

뒷마당에 있는 카페
마당에 있는 아뜰리에 앞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마당 가운데에 자리잡은 아름드리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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