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호수

호수를 예찬하다

by 민아

미시간호는 미국 4개 주와 맞닿으며 그 면적이 대한민국 절반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이다. 당연한 말로 호수의 반대편은 보이지 않고 육안으로는 그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기에 미시간호는 얼핏 바다와 같은 인상을 준다. 사실 그 거대한 규모는 호수인지 바다인지 구분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바다와 다를 바 없는 수평선을 선사하는 호수라 해도 바다와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시간호가 넓은 바다를 꿈꾸며 애석해야 할 일은 아니다. 바다와 같은 몸집에 민물이 지니는 아량을 갖춘 미시간호는 그만의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태양이 가까워지는 여름날에 호수는 어떠한 찬양도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 청록빛 호수에 닿은 햇살이 그 수면 위에 무수히 많은 빛 조각을 만들어냈다. 물결에 섞인 이 하얀빛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넘실거리며 하늘의 별처럼 수면 위에서 반짝거렸다. 청록색과 흰색이 섞여 호수의 본래 색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가까이에서는 밝은 청록색으로 보이는 호수는 멀어지며 점점 짙은 색을 띠더니 하늘과 맞닿아서는 남색에 가까운 색이 되었다. 하늘의 색과 뚜렷한 명조 대비를 이루는, 맑지만 깊은 바다의 색이었다.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하늘의 색이 한없이 가볍다면 바다의 색은 빛이 닿지 않는 그 깊이만큼이나 무거웠다. 하늘을 비추는 것이 바다의 색이라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바다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다.


그러나 발치에 닿는 호수의 물은 아무런 색도 지니고 있지 않아 물 너머로 빨갛게 칠한 발톱의 색을 선명히 드러냈다. 발등을 덮었다 금세 물러가는 호수 물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투명이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쨍한 차가움마저 투명하게 만드는 온전한 투명함이었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지만 그 투명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에 물속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잡을 수 없는 투명함을 손으로 건져 올려 팔뚝과 어깨에, 그리고 배와 가슴에 묻혔다. 투명한 물은 나의 몸을 색으로 물들이는 대신 심장까지 전해지는 차가움을 남겼다. 어느새 배꼽까지 올라온 수면 아래로 나의 다리가 투명한 물결과 함께 넘실거렸다. 여러 색이 흔들거리며 나의 시야를 가득 채웠으나 나는 그것을 투명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나의 피부색을, 혹은 바닥에 깔린 모래의 색을 아무리 길게 설명한다 해도 그 어떤 것도 충분한 표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영롱하고 반짝인다는 수식어가 꼭 들어맞는 투명함이었다.


일렁이는 물결에 현혹되어 무릎을 굽히고 온 몸을 물에 담갔다. 차가움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투명함이 온몸을 적셨다. 이번에는 코를 막고 얼굴을 담갔다. 저 멀리서 맑은 황갈색과 청록색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그 색과 나 사이에 놓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 사이를 상당히 많은 물이 채울 것이라는 것과 그 물은 차갑고 투명하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을 휘감아 적시다 이제는 몸과 하나가 된 호수 물이 그렇게 알려주었다. 잠시 후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의 몸과 물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안타깝게도 특정한 도구 없이는 이 화합에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얼굴이었다. 두 팔을 뻗어 양 옆으로 벌리자 주변의 물이 일렁거렸다. 눈으로 그 움직임을 좇았다. 나의 움직임에 이어 물결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물은 나와 하나가 되어 동시에 움직였다. 팔을 몇 번이나 앞뒤로 휘저어 투명한 물결을 만들었다. 물속을 유영하는 나의 팔은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만큼이나 가벼웠다. 몸 안이 공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손으로 엉덩이 뒤에 있는 땅을 짚고 몸을 기대니 무게가 뒤로 쏠려 다리가 살짝 들렸다. 물의 움직임에 따라 다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한결 더 가벼워진 몸은 이제 더 많은 호수의 물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맞은편에서 낮고 넓은 파도가 서서히 다가왔다. 물 밖에서는 사소해 보이던 파도가 물속에서는 거대해 보였다. 수면을 미끄러지며 다가오는 파도는 곧 나의 몸을 감쌌다. 온몸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파도는 머무는 법 없이 이내 나를 스쳐 지나가 모래사장에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뒤따른 파도가 연이어 다가왔다. 한 번, 또 한 번 더. 바람이 빚은 물결인지 저 멀리 지나가는 요트가 만든 파동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게 온 파도는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친근했다. 호수의 물과 함께 투명해진 나의 몸은 파도에 장단을 맞추며 흔들렸다. 유난히 힘이 센 파도를 만나면 몸은 그대로 떠밀려 중심을 잃기도 했다. 이때 파도에 저항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니 나의 몸은 금세 물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러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몸을 이완시키고 이내 물과 하나가 되었다.


가벼운 몸으로 가만히 앉아있으니 익숙해진 줄 알았던 물의 한기가 다시 느껴졌다. 열기를 만들기 위해 두 다리를 위아래로 교차시키며 물장구를 쳤다. 물방울이 하얗게 튀어 올랐다 다시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두 팔을 들어 양 옆으로 휘저었다. 모래 바닥에서 차갑게 식었던 팔이 수면에 가까워지자 따스함이 느껴졌다. 수면은 태양과 호수가 만나 섞이는 지점이었고, 호수가 태양을 받아들이는 한계선이기도 했다. 지구 곳곳을 비추는 태양이라지만 고작 육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호수의 바닥은 데우지 못한다. 그렇기에 물의 투명성은 투과성과는 함께 쓰일 수 없고 이는 물리적 이해보다는 물이 지닌 성품에 대한 추상적 이해에 기반을 둔 투명성일 것이다. 물이 가지는 투명성은 무겁다. 그래서 물과 하나 되기 위해서 나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져야 한다. 그에 비해 빛이 가지는 투명성은 가볍고, 내가 무게를 가져야만 빛과 공존할 수 있다. 추상적인 투명함은 이렇듯 상반되는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호수에 앉아 가슴 아래로는 차가운, 어깨 위로는 뜨거운 투명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든 우주의 모든 것은 뜨겁고 차갑지만 결국은 투명할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우주의 조화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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