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

노에미는 말을 좋아해

by 민아

직장 동료와 그의 딸과 함께 길을 나선 적이 있었다. 예닐곱 살을 겨우 넘겨 보이는 노에미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노에미의 손을 잡고 걷던 동료가 문득 여자들끼리 걸으라며 내게 노에미의 손을 건넸다. 나는 얼떨결에 노에미의 작은 손을 잡았다. 노에미의 다섯 손가락을 잡기 위해서는 손가락 세 개면 충분했다. 앞서 걷던 다른 동료가 노에미에게 한국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 끝에 노에미는 아시아?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에미에게 한국의 위치를 알려주는 막간 지리 수업 후에 한국어 수업이 이어졌다. 노에미를 향해 안녕하세요를 천천히 발음했다. 노에미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말이 한국어로 무엇이냐고 물었다. 말馬이라니. 수많은 외국인에게 수백 번도 넘게 한국어를 알려주었지만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단어였다. 보통 그들이 궁금해한 것은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해요를 시작으로 좋아요, 얼마예요, 어디예요, 물 주세요 등 실용성이 높은 단어들이었다. 내가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순간 번뜩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아직 잊고 있지 않은 어린 나오미에게 단어를 알려주었다. 그제야 나오미는 작은 입을 움직였다. 말. 그리고는 좋아하다를 어떻게 말하는지 물었다. 좋아해를 천천히 발음했다. 그리고 두 단어를 이어 완전한 문장을 알려주었다. 노에미는 말을 좋아해.


의사들의 슬기로운 생활을 다루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심장에 큰 문제가 생긴 환자가 병원에 실려온다. 상황이 이토록 악화될 때까지 왜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한 의사가 자책하듯 이야기하자 옆에 있는 의사가 돈 때문이 아니겠냐고 안타까운 듯 대답한다. 이 젊은 환자는 아침에는 택배 일을 하고 저녁에는 수산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돈은 다음 문제고 수술이 먼저라는 의사의 결정에 환자는 수술실로 들어간다. 심장에 인공 판막을 넣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환자의 아버지는 의사를 붙잡고 울면서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판막을 넣어달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한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판막으로 부탁한다고. 의사는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가장 좋은 판막으로 수술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을 찾았다. 돈 때문에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했지만 또 돈 덕분에 가장 좋은 판막을 가진 심장이 아들을 건강하게 살리리라 믿는다. 병원에 온 아버지는 일을 하다 온 것인지 작업복 차림이었다. 주머니에는 목공 장갑이 반쯤 쑤셔 넣어져 있었다. 차림새야 제작진의 세심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버지의 그 간절한 마음은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절한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도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노에미가 생각났다. 두 이야기를 잇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지어진 징검다리는 이러하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기준, 값이 낮은 것은 가치도 낮다는 평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는 판단, 그리고 돈을 벌어 비싼 물건을 살 수 있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환상. 삶에서 선택에 마주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돈이 될 수 있는 것,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이 과정에서 좋은 것만 바라보느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은 적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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