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멍하니 창 밖을 보던 중, 갑자기 낯익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 정류장에 붙은 광고에 쓰여있는 글자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버스가 떠나기 전까지 창밖으로 보이는 그 광고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탈리 포트만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며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깨물고 있었고, 입술과 손톱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칠해진 색이었다. 그 아래에 DIOR ROUGE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이 중 'R' 두 개는 아주 약간의 차이로 겹쳐져 있어 하나의 알파벳으로 보일 뻔도 했지만 빨간색과 흰색으로 각각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몹시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사실 어떤 이미지든 DIOR이라는 네 글자와 함께라면 바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세련이고 고급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유행이 탄생하리라.
그 이미지를 너무 오래 쳐다보아 최면이라도 당한 것처럼 나는 순간 이 곳이 파리 마들렌 광장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그 비슷한 분위기에 비슷한 글자가 적힌 광고를 마들렌 광장 한 구석에서 보았었다. 지금 저 광고판을 뜯어다 파리 어느 길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아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이미지가 서울에 있는 버스정류장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보였다. 짙게 화장을 한 외국인의 얼굴, 알파벳 몇 개와 미사여구에 가까운 짧은 설명들, 그리고 립스틱의 사진이 맥락도 없이 놓여 있다. 저 이미지가 그 자리에 있을 유일한 개연성은 광고주가 돈을 냈다는 것뿐이다. 저 광고판은 여기 서울에서 파리의 이미지를, 특히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부분을 보여주며 한국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눈치 없이 끼어들어온 이방인의 사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양손을 문지르며 어떻게 하면 저들의 돈을 더 많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뜯어낼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 침략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침략자. 우리 사회 깊숙이에 스며든 이방인의 이미지를 보면 백 년도 더 전에 우리나라에 발을 들인 침략자들이 떠오른다. 갑작스레 나타나서는 우리의 신을 믿고 구원받으라, 신문물을 받아들여 개화하라 엄포를 놓았던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신식 무기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황금을 손에 쥐고는 한결 정중한 태도로 우리의 삶을 장악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화된 침략자의 이미지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지역이나 개인이 가진 개별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침략은 주체가 객체보다 우월하다는 전제 아래 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침략지의 역사, 문화, 정서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역사, 문화, 정서를 만들어내기에 바쁘다. 세계화 혹은 마케팅이라는 미명 하에.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들이 만든 이미지에 현혹되기를 바란다.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이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가장 좋은 것이야, 그리고 너도 이 이미지처럼 될 수 있어. 어느 고가 명품 브랜드든, 미니멀한 생활용품 브랜드든 본질은 모두 똑같다.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세상을 장악하려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여름날 저녁, 서울에 있는 한 버스 정류장에서 문득 침략자의 이미지를 보았고, 또 문득 괴리감과 폭력성을 느낀 것이다.
오늘날 침략은 더 이상 국가 차원에서, 물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침략자는 이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든 황금만 쥐고 있다면 누군가를 침략할 수 있다. 황금을 더 가진 자가 이기는 전쟁이다. 물론 그 침략의 목적은 보통 더 많은 황금이다. 그러나 욕망에 휩싸여 무작정 쳐들어가는 것은 현대인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영리하고 평화롭게 욕망을 달성하는 방법을 택한다. 바로 여기서 아름답게 치장한 유명인의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업종에 따라 사랑스러운 아이나 푸르른 자연 등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유명인을 대신할 수도 있다. 이 보기 좋은 이미지를 통해 침략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가치마저 높일 수 있는 유혹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통해 이러한 일들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현혹시키는 이미지가 무서운 것은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판단할 기회를 박탈해버린다는 것이다. 가치와 환경과 역사가 다를 수많은 이들의 욕망을 한 가지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완전히 전복되어버린 사고는 자아실현의 완성이 그 이미지에 있다고 믿는 지경에 이른다.
현대 사회에서 은둔 생활을 하지 않고서야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디어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쉼 없이 쏟아내고 한번 대중 속에 던져진 이미지는 자연스레 눈덩이처럼 불어나 쉽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거대한 설산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달된 이미지는 손바닥에 올린 눈송이가 녹아내려 손바닥에 한기를 심듯이 우리의 정신까지 스며든다. 버스정류장의 광고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진 한 장이 아니다. 침략을 위해 쏘아대는 대포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진 한 장으로 대포를 막기 위해 세운 그 어느 요새보다 더욱 든든한 방어를 할 수 있다는 뜻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