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점령당한 삶

by 민아

2020년을 상상할 때 누가 세계적인 전염병의 확산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제는 누가 코로나를 빼놓고 2020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전무후무할, 전무했고 후무하길 바라는, 이 시국에 작은 기록을 덧붙이기로 했다.


뉴스 속에만 머무를 줄 알았던 코로나는 기세 등등하게, 그리고 징글징글하게 많은 이들의 일상에까지 파고들어 비현실적인 광경을 만들었다. 텅 비어버린 에펠탑 앞 광장과 메카의 성지 같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굳이 인터넷을 찾지 않더라도 장을 보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일 미터 간격을 두고 줄을 선 사람들만 보아도 그러했다. 그리고 외출 통제라는 이례적인 조치 아래 매일매일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나의 일상이 그러했다. 2월부터 구직 생활을 하느라 의무적으로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없었지만 방만해지지 않기 위해 규칙적인 일상을 찾아야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출 통제가 발표된 후 이제까지 해온 예사로운 다짐은 맥을 못 추릴, 그 어떤 외부 환경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독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 것인가 생각했다. 강제적으로 방콕을 한다고 집안에서 탱자탱자 놀 수는 없었다. 장기전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유난을 떨 것 없이 평소 해왔던 일들을 조금 더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기로 했다.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 후 라디오를 들으며 아침을 먹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가벼운 예능을 보며 점심을 먹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친구와 통화를 하고, 해가 지면 자유시간. 문득 몸서리치게 지루해서 침대 위를 마구 뒹굴기도 했지만 힘든 시기를 함께 겪고 있는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나면 견딜만해졌다. 대화는 항상 코로나의 근황으로 시작해 코로나의 장래에 대한 예견과 악담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해가 참 급하게도 뜨고 참 더디게도 지는 나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주가 지난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점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평소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넘치는 고독 속에서 드디어 요리에 정성을 쏟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만들었던 떡볶이 중에 제일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이를 맛 보여줄 사람이 없다. 아무리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해도 이를 온전히 전할 수가 없었다. 문득 ‘언제까지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라는 두려움 섞인 질문이 떠올랐다. 언제쯤 친구와 마주 앉아 잔을 부딪히며 맥주를 마실 수 있을까. 언제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을 수 있을까. 일상이 정지된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다. 사물을 통해서도 전파가 되지만 사물에 자리를 잡은 바이러스는 번식하지 못하고 약 9일 후면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 사이에서는 그 전파력이 어마어마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일상을 멈추면서까지 시민들의 외출을 통제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상황이 되었으니 참으로 씁쓸하다. 뿐만 아니다. 전염병이 일상을 마비시킬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가져오자 몹시 날카롭고 예민해진 사람들도 쉬이 볼 수 있었다. 모두가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연대도 느낄 수 있지만, 사람이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 매개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외출 통제령이 내려지기 이틀 전,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슈퍼의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채소 코너에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 들었던 감자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내게 단호한 말투로 한 소리를 했다. 마드모아젤, 물건을 집었다 놨다 하지 마. 당황해서 내려놓았던 감자를 다시 집고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내가 동양인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위로하며 자리를 옮겼지만 장을 보는 내내 눈치가 보여 함부로 물건을 집기가 어려웠다.


외출 통제령이 시작되던 날 아침, 빨래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골목 끝에 있는 슈퍼에서 시작된 줄이 빨래방 앞까지 늘어서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다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빨래방 안에는 행색이 추레한 사람이 테이블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보통은 빨래방에 앉아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왠지 그 안에 있기가 찝찝해 문밖에서 기다렸다. 문득 슈퍼에 늘어선 줄 사이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한 아주머니가 다른 아주머니를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 걸지 마! 당신은 마스크를 썼지만 여기 마스크가 없는 사람들도 있잖아! 전후 사정을 알지는 못했지만 아주머니가 단단히 화가 나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이사를 가기 위해 트렁크 두 개와 배낭, 작은 손가방을 이고 기차를 탔다. 짐이 많은 지라 타고 내릴 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내릴 때에는 내가 짐을 옮기는 동안 사람들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틀림없이 주변 사람들이 도와줬을 터였다. 그러나 다들 섣불리 나의 짐을 만지기를 꺼려했고 나 역시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와중에 내가 잠시 낑낑거리자 먼저 내린 아저씨가 뒤를 돌아 번쩍 짐을 들어주었다. 그 모습이 슈퍼맨 마냥 용감해 보였다.


무사히 이사를 마친 후 슈퍼마켓에 갔다. 다행히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슈퍼 안에는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다들 서로 거리를 두며 몹시 조심하는 눈치였다. 진열대에서 물건을 고르다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치즈 코너에서 맛있는 치즈가 무엇이 있나 묻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 수가 없어 아쉬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얘기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문득 길 옆에 서있던 남자 네 명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 꼭 필요할 때 빼고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프랑스 정부가 외출 통제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4월 중순까지라고 했지만 다들 적어도 4월 말까지는 이 상황이 이어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5주는 더 지나야 한다. 그때쯤이면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는 일상이 익숙해지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무인도나 심지어 화성에 고립되어도 살아남던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보았던 세상이 허무맹랑한 환상은 아니었다. 작금의 사태를 보자 인간이 세상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며 인공 지능이 인간을 없애려고 한 영화가 생각났다. 실제로 인간이 일상을 중지하자 하늘이 맑아졌고 동물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바이러스의 아이러니한 문제 해결은 자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마르세유의 뿌리 깊은 문제였던 마약 거래가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가 떴다. 우리가 그렇게 소중히 지키던 일상이 예상치 못했고 의도치도 않았지만 어떻게 우리를 위협했는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일상이었을까.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는 거리를 향해 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을 위한 응원이었다. 고립된 채 하루를 보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 혼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위기를 함께 이겨내자는 따뜻한 연대에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과 내가 느끼는 감정이 몹시 껄끄러워 8시가 되는 것이 몹시 신경 쓰인다. 갑작스레 허공을 가득 채우는 저 소리가 사람과 접촉을 피해야 하지만 또 사람이 가장 그리운 이 모순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리고 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도 저 안에 섞여있을지 생각해본다. 우리 할머니는 매번 전화할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사람 조심해라.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러나 할머니가 노심초사 걱정하는 나도 사람이고, 나는 오늘도 친구들과 안부를 물으며 마음을 달랜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빼앗은 것은 일상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누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린다.


외출 통제 이후 한산해진 마르세유 중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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