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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n 20. 2020

타이니 하우스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작은 집을 차에 매달고 여행을 하는 예능을 보았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집은 순식간에 출연진뿐 아니라 나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타이니 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모양인지 프로그램 초반에 외국의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석사 졸업 논문에서 타이니 하우스 운동을 소개했던지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불안과 염려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타이니 하우스의 가치가 물질주의에서 벗어난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삶이 아니라 힐링을 찾아 떠나는 ‘유행’으로 변질될까 노파심이 들었다. 그래서 타이니 하우스 운동의 시작과 반대되는 모습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오지랖 넓은 걱정을 잠시 했다.


작은 집을 끌고 다니는 예능의 출연진들은 여행지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올랐다. 뒤에 달린 집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차는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의 소재가 되었다. 그 장면을 보며 몇 번이나 웃음을 터트리다 문득 시골 할머니네에 가기 위해 언제나 고속도로를 타던 것이 생각났다. 할머니네에 일반 국도로 가본 적이 없었다. 통행료 몇천 원만 내면 매끄럽게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금세 할머니네 도착할 수 있으니 굳이 국도를 탈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몇 년 전 프랑스 친구와 국도를 달려 여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프랑스 중부에서 북부로 가는 여정을 위해 종이 지도를 펼쳐 지나야 할 도시들을 살폈다. 도시를 순서대로 암기한 후 비상용 지도를 하나 챙겨 차에 올랐다. 나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인터넷이 없는 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것 마냥 신기해했다. 우리는 도시를 지날 때마다 표지판에 쓰인 글자가 아닌 생생한 현장의 모습으로 도시를 발견할 수 있었고,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놓인 공간도 한껏 체감할 수 있었다. 비록 걸음이 아닌 차의 속도로 느낀 풍경이었지만 고속도로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고속도로에 이어서 떠오른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궁상'이라는 단어로 폄하된 것들이었다.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탄다고 궁상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행동들은 그것이 돈이 없어서 하는 것으로 여겨져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입던 옷을 물려받는 것, 남은 음식을 싸오는 것, 버려진 물건을 주워오는 것 등등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돈으로 사면 편할 일을 왜 고생을 하냐는 핀잔을 불러오는 행동도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이제 미련하고 궁상맞은 일이 되어 버렸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은 노력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한국은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고, 또 실감했다. 우리나라에는 비용만 지불하면 편리하고 우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온갖 서비스가 사회 곳곳에 포진해있다. 돈이 정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말은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뜻과 돈이 많아야 잘 살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사회의 많은 영역이 시장에 포함되는 것을 우려하며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부유한 지 가난한지가 더욱 중요해진다"라고 이야기했다.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돈을 좇아야만 한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도,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돈이다.


그래서 이제 궁상맞지 않고 남들처럼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젊었을 때는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있으니 유럽 여행도 갔다 와야 하고, 뚜벅이 소리 안 들으면 자기 자동차도 있어야 하고, 중요한 자리에서 당당하려면 번듯한 정장, 외투,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려면 그럴싸한 장비들로 구색도 갖추어야 하고, 등등 등등. 백만 원짜리 운동화가 어떻게 유행이 되냐는 박막례 할머니 말씀이 무색하게 명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세상이다. 돈으로 산 것들로 삶을 반짝반짝 빛내야 하는 세상이다. 돈이 없으면 비참해지는 세상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세상이다.


전국 곳곳을 마당으로 삼을 수 있는 이동식 집을 끌고 다니는 예능을 보며, 너무나 번듯하게 지어진 그 작고 아기자기한 집을 보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시의 높은 집값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대안적 삶을 살기 위해 시작된 것이 타이니 하우스 운동이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작은 공간에 살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자연스레 소박해졌다고 말한다. 이처럼 타이니 하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대신 이웃이나 자연과 같은 집 밖의 환경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내 것'을 내려놓고 '우리 것'을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여행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부딪히고 성내고 장난치고 웃으며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보기 위해 매주 목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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