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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l 26. 2020

존재하기 위해 소유해야겠는데요

라는 변명을 납득하기 위한 구구절절한 이야기

요가원에 다녀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련을 하니 에너지가 배로 솟아났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져 땀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줄줄 흘러내렸다.


고무 매트에 흡수되지 못한 물기가 애처로웠고 나는 자꾸만 흘러나오는 땀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선생님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쉼 없이 산스크리트어 구령을 외쳐댔다. 선생님과 합을 이루어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동작을 이어가는 옆사람 덕에 나까지 동작과 동작 사이가 매우 밭아졌다. 자꾸 수영장이 떠올랐고 뜨거운 축축함이 불쾌했다. 나중에는 너무 미끄러워 점프도 할 수 없고 아도무카 스바사나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기름을 발라놓은 매트 위에서 벌칙을 당하는 모양새였다.

어찌어찌 수련이 끝나고 축축한 몸을 뉘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했다. 매트가 잘못인가 내가 잘못인가. 당연히 장비 탓이다. 사바사나를 마치고 연꽃자세로 앉아 다 같이 ‘옴’을 외쳤다. 축축한 옴이었다. 선생님이 쾌활한 인사로 수련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한 풀색 레깅스에 연한 황톳빛 민소매 차림이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풀빛 레깅스가 어찌나 보드랍고 산뜻해 보였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 생각을 했다. 힘들었지만 상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바다를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마르세유에 잘 오셨다고,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고 손을 흔들고 싶은 정도였다. 수영은 서툴지만 지금이라면 그들 틈에 껴서 바다에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땀이 아무리 흘러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텐데.

집에 와서 요가 타월을 검색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입었던 레깅스도 찾아봤다. 레깅스 뒤쪽에 새겨져 있던 곡선 문양을 똑똑히 봐 두었다. 마침 그 브랜드에서 타월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고 레깅스 몇 벌도 프로모션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할인을 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다. 긍정적인 태도와 건강한 몸을 얻고자 시작한 요가인데 용품을 마련하다 마음이 쪼그라들기 딱이었다. 요가를 통해서 온전히 ‘나’로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은 자금이 온전히 있어야 했다.

한번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나는 할인 중인 타월과 레깅스를 하나씩 주문했다. 이걸 사서 내가 수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된 거지. 조금 더 구차해지자면, 레깅스 하나를 가지고 매일매일 빨면서 입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덧붙이자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냐 존재냐’이다. 오늘은 자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베갯잇을 축축이 적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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