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변명을 납득하기 위한 구구절절한 이야기
요가원에 다녀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련을 하니 에너지가 배로 솟아났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져 땀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줄줄 흘러내렸다.
고무 매트에 흡수되지 못한 물기가 애처로웠고 나는 자꾸만 흘러나오는 땀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선생님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쉼 없이 산스크리트어 구령을 외쳐댔다. 선생님과 합을 이루어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동작을 이어가는 옆사람 덕에 나까지 동작과 동작 사이가 매우 밭아졌다. 자꾸 수영장이 떠올랐고 뜨거운 축축함이 불쾌했다. 나중에는 너무 미끄러워 점프도 할 수 없고 아도무카 스바사나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기름을 발라놓은 매트 위에서 벌칙을 당하는 모양새였다.
어찌어찌 수련이 끝나고 축축한 몸을 뉘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했다. 매트가 잘못인가 내가 잘못인가. 당연히 장비 탓이다. 사바사나를 마치고 연꽃자세로 앉아 다 같이 ‘옴’을 외쳤다. 축축한 옴이었다. 선생님이 쾌활한 인사로 수련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한 풀색 레깅스에 연한 황톳빛 민소매 차림이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풀빛 레깅스가 어찌나 보드랍고 산뜻해 보였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 생각을 했다. 힘들었지만 상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바다를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마르세유에 잘 오셨다고,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고 손을 흔들고 싶은 정도였다. 수영은 서툴지만 지금이라면 그들 틈에 껴서 바다에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땀이 아무리 흘러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텐데.
집에 와서 요가 타월을 검색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입었던 레깅스도 찾아봤다. 레깅스 뒤쪽에 새겨져 있던 곡선 문양을 똑똑히 봐 두었다. 마침 그 브랜드에서 타월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고 레깅스 몇 벌도 프로모션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할인을 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다. 긍정적인 태도와 건강한 몸을 얻고자 시작한 요가인데 용품을 마련하다 마음이 쪼그라들기 딱이었다. 요가를 통해서 온전히 ‘나’로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은 자금이 온전히 있어야 했다.
한번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나는 할인 중인 타월과 레깅스를 하나씩 주문했다. 이걸 사서 내가 수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된 거지. 조금 더 구차해지자면, 레깅스 하나를 가지고 매일매일 빨면서 입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덧붙이자면,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냐 존재냐’이다. 오늘은 자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베갯잇을 축축이 적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