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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Aug 01. 2020

자원봉사, 주머니보다 마음을 두둑이

"이제 자원봉사 그만하고 돈 되는 일을 해"

"너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지"


이십 대 중반,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며 틈틈이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던 내가 종종 들었던 말들이다. 그때는 돈을 받지 않더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만족했었고 또 이렇게 쌓은 경험과 인연이 나의 뼈와 살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말에 공감하며 내 삶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데 자원봉사는 사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 나는 여러 해에 걸쳐 축제 무대 설치, 공연팀 통역, 그리고 유기농 박람회 음료 판매 일을 자원해서 봉사했다. 행사 주최 측에서 올린 자원봉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도 했고 알음알음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모두 행사의 가치관이나 진행 과정 등이 흥미로워 그 안에 깊이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내 기준에서 그들은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물론 실상이 모두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 후에 알게 되었지만.


자원봉사를 하며 좋았던 점은 내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온전히 그 일에 있다는 것이었다. 몸이 힘들거나 종종 사람들과 부딪히더라도 그 문제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에라이, 돈 보고 참자' 라거나 '내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지'라는 변명으로 도망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으므로 한결 명료하게 문제를 이해하거나 한결 쉽게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곳 그 순간 자체에 있었다.


안 좋은 점은 종종 무급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몰라주는 데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원봉사자들은 오로지 그 일이 좋아서 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 보상 이상의 것이다. 사회 정의, 연대, 가치 실현 등등 비물질적인 요소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을 보지 않고 그들의 노동력만 보는 곳이 있다. 혹은 어차피 이 일이 좋아서 온 사람들이니 아무렇게나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봉사자들의 열정과 호의를 약점 삼아 이용하려는 나쁜 마음이다.


요 몇 년 간 독립적인 삶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자원봉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돈을 받고 일을 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지만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다. 하고 있는 일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지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고민을 하다 어느 순간 고민마저 버거워 생각을 멈추었다. 퇴근을 하고는 멍하니 유튜브를 뒤적이기 일쑤였고 쉬는 날에는 그나마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참으로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홀로 무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만난 책 한 권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이었다. 그중 몇 구절을 아래에 적어본다.

"소외된 활동을 할 때 나는 나 자신을 행동의 주체로 체험하지 않고 나의 활동의 결과로 경험한다. 다시 말하면, 나와 분리되어 나를 초월하거나 나와 대립된 '저편에 있는' 무엇으로 경험한다. 근본적으로 행동의 주체는 나 자신이 아니고, 내적 혹은 외적 힘이 나를 통하여 행동한다. 이렇게 나는 나의 활동의 결과에서 떨어져 나온다. (...) 소외되지 않은 활동의 경우, 나는 나 자신을 행동의 주체로 체험한다. 소외되지 않은 활동은 탄생과 생산의 과정이며, 이때 나와 나의 생산품과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또한 나의 활동이 나의 힘과 능력의 표출임을, 나와 나의 활동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가 일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소외되지 않은 활동을 생산적 활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133쪽
"생산적 인간은 자기가 접하는 모든 것의 생명을 일깨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며 다른 사람과 사물에게도 생명을 부여한다." 134쪽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개성으로서 사고하는 데에는 무력해지고, 모든 면에서 오로지 소속된 집단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 사고의 독립을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대한 신념을 잃었다. (...) 절대적 무위도식,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망각하는 , 그것은 바로 그의 육체가 요구하는 바이다." 234
"유일하게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은 세계 속으로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활동이다. 그것도 세계 자체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배려하고 베푸는 활동이다." 234쪽


내게 생산적 활동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자원봉사를 떠올렸다. 자원봉사는 자본이 아닌 휴머니즘적 가치가 동기가 되는 행위, 또한 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행위이다. 꼭 자원봉사만이 생산적 활동은 아니겠지만 돈돈돈을 외치는 사회 속에서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좇는 그 활동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꼭 돈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을 얕보아서가 아니라 돈이 만능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돈이 배제된 환경 속에서 정신적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물론 열정 페이로 노동을 착취하는 것과 가치 추구를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금전적 수익을 얼마나 창출하는지보다 어떤 가치를 어떻게 실현하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 임금을 높이기 위해 분투하는 만큼 정당한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만연하다 못해 사람 위로 넘쳐흐르는 사회에서 그에 반하는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은 희망으로 자원봉사가 사회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노동력을 희생하는 바보짓이 아니라 개인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한 능동적 활동으로 자원봉사를 건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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