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아 Dec 04. 2020

깊이 잠들지 못하면 꿈을 꾼다고 했던가.

어느 날 친구가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십 년 전에 파리에서 찍은 사진이야. 이제는 이게 꿈인가 싶다."


사진 속에는 주황빛 조명으로 빛나는 에펠탑을 뒤로 한 채 친구가 수줍게 웃고 있었다. 모든 배경이 새까만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반면 에펠탑은 홀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든 광고에서든 혹은 실제로든 너무나 많이 보아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에펠탑은 그 사진 속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완벽히 변치 않는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에펠탑이 환상 속에 존재하는 허구처럼 느껴졌다. 누구도 본 적은 없지만 모두가 유니콘이라면 새하얗고 윤기 나는 몸에 이마 한가운데서 빛나는 뿔을 떠올리듯 말이다.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백 년 전에도 백 년 후에도 한결같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후 처음 한국에 들어갔을 때, 비행기에서 내려 인천공항의 폭신한 카펫을 밟던 그때, 한국 사람들 틈에서 내가 타고 온 비행기를 바라보았던 그때, 프랑스에서 보낸 지난 몇 개월이 꿈처럼 느껴졌다. 말 그대로 꿈을 꾼 마냥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장소였다. 아주 오래되거나 아주 멀리여서 아득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아 아련한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그랬었다. 수 백번의 밤을 지새웠던 그 시간이 그렇게 꿈인가 싶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꿈인가 싶은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뒤돌아보면 나도 나의  시절이 꿈처럼 느껴질까 싶어 곰곰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현실을 살고 있었다.  시절 모든 순간들이 생생히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그건 꿈이 아니었다. 그럼 어느 시절이 꿈처럼 느껴질까. 어느 시절이 현실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질까. 그러나 어느 순간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시절을 꿈처럼 느끼던 순간마저 현실이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과거가 현실이었다. 그저 현실이고 물론 현실이었다.


에펠탑 앞에서 보낸 그 순간이 친구에게 꿈같은 것은 너무 오래되어서일까 아니면 그 순간 꿈을 꾸듯이 행복했었기 때문일까. 곰곰 떠올려보니 행복했던 순간들은 많았지만 꿈을 꾸듯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꿈꾸던 일이 이루어져 행복했더라도 그것은 결국 현실 속 일이었다. 행복한 순간에 행복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 꿈이 아니었다. 내가 온전히 행복했기 때문에 그것은 온전히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을 가져라. 꿈꾸면 이루어진다.'


왜 이렇게 다들 꿈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걸까. 누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로 오래전에 마음먹었다. 꿈을 갖는다면 그건 꿈을 이루어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 굳이 꿈을 찾는 것은 부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살면서 꼭 이루어야 하는 꿈이 대체 무엇일까. 애당초 왜 꿈을 이루어야 하는 걸까. 현실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순간 꿈은 절대 꿈일 수가 없을 텐데.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아야만 꿈이 될 수 있다면, 꿈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요새 나는 잠을 자면서 꿈을 많이 꾼다. 아침에 일어나서 꿈이 여러 개 생각날 때도 있다. 그 꿈들은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내 마음속에 남는다. 꿈에서 만난 사람들, 꿈에서 갔던 장소, 꿈에서 먹었던 음식 등등 모든 것이 꿈에서 깨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오로지 내 마음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꿈에서 행복했든 불행했든 나의 마음만 그러했을 뿐이다.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꿈속에 있는 모든 것은 눈을 뜨는 순간 허상이 된다. 누구도 본 적 없지만 모두가 그 모습을 알고 있는 유니콘처럼 허구가 된다.


꿈에서 깨고 나면 모든 것이 현실에 존재하는데 나의 마음만 그 허상 속에 남아있다. 기억에서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방금 전 꾸었던 꿈이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행동을 취하기에는 그저 꿈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만 분주할 뿐이다. 분주한 마음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그닥 달가운 일이 아니다. 꿈을 꾸지 않고 깊이 잠들어 긴긴밤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은 충분한 휴식으로 새로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지 않고 눈앞에 있는 현실만 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가벼워질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불을 개는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