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독일인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를 국가에 축하할 일이 있더라도 크게 기뻐하면 안 된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고 한다. 해서 독일의 국기를 자랑스레 여기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몇몇의 생각으로 한 나라의 국민 정서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특히나 빨갛고 하얀 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과거 군국주의의 상징을 일상 중에 문득 맞닥뜨릴 때에는 더욱 그들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유럽 근현대사의 주역이라면 주역인 독일은 그들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1년 베를린 남부에 문을 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도 그 방법 중 하나이다.
유대인 박물관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완전히 다른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외관이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1753년 왕립재판소를 위해 지어져 지금은 박물관의 입구 역할을 하는 바로크식 건축물과 그 오른편으로 2001년 박물관 개관을 위해 지어진 현대 건축물이 비스듬히 붙어 있는 구조다. 제일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첫 번째 건물은 특별전시와 기념품 매장, 카페 등의 부대시설을 위해 쓰이고, 리베스킨트 건물이라 불리는 두 번째 건물은 나치 독일 당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기리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미국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두 번째 건물은 높은 직사각형 건물이 지그재그의 형태로 이어져있고, 짙은 회색빛 외벽을 기다란 선들이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창을 만들고 있다. 밝은 색의 장식으로 치장한 건물과 그 옆에 어둡고 높이 솟은 건물의 조화 일지 대비 일지 모를 만남은 유대인 박물관이라는 이름 덕에 한층 더 의미심장해 보였다.
리베스킨트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크식 건물을 통해야만 했다. 뒤편의 정원을 향해 시원하게 뚫린 전면 창 덕에 박물관 내부는 몹시 밝고 따뜻했다. 그러다 갑작스레 사선으로 뚫린 새카만 입구를 마주했는데 이곳이 바로 리베스킨트 건물의 입구였다. 입구 너머에는 기다란 계단이 아래를 향해 이어졌는데 계단이 내려가도 낮아지지 않는 천장 덕에 동굴 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계단 끝에 다다르니 짙은 회색의 어두침침한 공간을 만났다. 스산한 느낌이 물씬 전해지는 이곳은 의도적으로 온도조절 설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 통로 양 옆으로 사선으로 이어진 공간에는 손수건, 사진, 편지 등의 일상품과 그 물건들의 주인에 대한 짤막한 소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었다. 관람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전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폈다. 통로 끝에는 세계 각지로 망명을 떠나는 유대인들의 흑백사진이 놓여 있었다. 배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나는 그들의 내면을 감히 알 길이 없었다.
통로 끝은 망명의 정원The Garden of Exile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높이 솟은 네모 기둥이 좁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는 망명의 정원은 정원이라기보다는 예술가의 설치작업 같았다. 고개를 바짝 들어야 기둥 꼭대기에 심어진 올리브 나무 사이로 겨우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높은 기둥 사이의 좁은 공간을 걷자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기울어진 바닥 때문에 걸음이 휘청휘청 불안했다. 리베스킨트는 독일을 떠나 새로운 땅에 닿은 망명자들의 삶이 이러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환히 웃는 망명자들의 사진과 정원의 불안정한 공간이 온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대의 일부를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정원을 나와 통로를 되돌아가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놓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사람 얼굴처럼 눈, 코, 입이 뚫린 동그란 철판이 가득 깔린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의 폭은 좁았지만 길이는 꽤 깊었고 하늘을 향해 뚫린 벽은 아주 아주 높이 솟아 있었다. 얼굴 모양 철판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철판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무겁게 공간을 울렸다. 거칠게 뚫린 눈, 코, 입을 가진 얼굴들은 웃고 있는지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그도 아니면 그저 모든 구멍을 최대한 확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알 수 없는 표정만큼이나 그 위를 밟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복잡했다. 철판에 새겨진 얼굴에 비해 훨씬 섬세했으나 그 내면을 추측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흑백사진 속 망명자들의 얼굴과 기괴한 철판 얼굴과 관람객들의 얼굴은 불안, 고통, 슬픔 등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담고 있었다. 이렇듯 리베스킨트 건물은 유리창 뒤에 놓인 유물을 통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공간을 통해 관람객이 과거를 경험하게 했다. 역사와 그 역사를 기억하는 박물관의 역할은 글이나 사진, 유물과 같은 기록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관람객이 그 시대를 생각하고 느끼는 것, 나아가 오늘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베스킨트가 만든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는 관람객을 매체 삼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어서 바로크 건물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을 보러 갔다. 박물관의 입구에 큼지막이 걸려 있던 ‘Welcome to Jerusalem’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일었다. 전시는 알록달록하고 복잡스러운 예루살렘의 시장을 보여주는 비디오로 시작했다. 거대한 스크린에 비치는 생기 넘치는 영상은 엄숙하디 엄숙한 리베스킨트 건물과는 딴판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어서 다양한 시대에 그려진 각양각색의 예루살렘 지도, 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운 십자가와 유대교의 상징물, 그리고 위대한 해롯 왕Herod the Great이 세운 성전과 그 시대에 뿌리를 둔 유대인들의 풍습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유리잔을 깨는 의식은 기쁜 날에도 해롯 왕의 신전이 파괴된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었다. 익숙한 듯 생소한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전시는 현대의 유대교를 이야기하며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광경이 담긴 영상을 소개했다. 동그란 방의 내벽을 감싸며 360도로 펼쳐진 영상은 현장감을 그대로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순간 냉소적인 마음이 일며 전시에 대해 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보다는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개가 단연코 주를 이루었던 전시인데 그 제목에 의문이 들었다. 이 전시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그러나 나는 유대인 박물관에 있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함께 독일의 과거에 대한 적극적 자백이고 사죄이자 미래에 대한 실천적 다짐이다. 그러나 박물관은 과거의 역사만 기리는 곳이 아니었다. 박물관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 생각하다 오늘의 역사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를린을 다녀오고 며칠 후 예루살렘에서 미국 대사관이 개관을 했다.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 대통령의 사절단을 반가이 맞았다. 웰컴 투 예루살렘. 그리고 많은 언론이 그날의 예루살렘을 보도했다.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마주하기 위해 세워진 박물관은 훗날에 그날의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