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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Apr 18. 2021

문득 떠오른 영화

어느 날 아침 소일거리로 하루를 맞이하던 중 문득 몇 년 전에 본 '벌새'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당시 입소문이 꽤나 무성히 퍼져 영화관에 가는 일이 드문 우리 엄마도 그 줄거리를 알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보러 갔을 때는 스크린이 관객수에 비해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영관이 휑했다. 앞줄 오른편에 앉아있었던 지라 안 그래도 커다란 스크린이 더욱 커 보였고 상영시간 내내 몸을 왼쪽으로 틀고선 영화를 봤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영화를 보던 순간과 그때 느낀 감정이 생생하다. 종종 뭉클했고 종종 지루했던 그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오르면서부터 마음속 깊이에 묘한 감정을 일으키더니 하루 종일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감정은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게 오래도록 남아 영화를 곱씹어 보고 또 주인공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에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린 주인공은 그대로 있는데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자꾸만 변했다. 그 혼란스러움이 깊이 와 닿았다.'


세상을 제대로 알기에는 어린 나이, 아주 작은 세상만을 소유하고 있는 어린 나이. 그러나 그녀의 나이, 의지, 바람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제멋대로 변화한다. 아무리 그녀가 현상태를 유지하고 싶더라도, 혹은 현상태가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방관과 안일이라는 단어로 절하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한참 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의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기에 영화를 곱씹어 보았고, 그 마음이 매우 안쓰럽지만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라고 따스한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고 싶어 주인공을 자꾸 떠올렸던 것이다.


 년이 지난 어느  문득  영화가 떠오른 것은  어린 주인공과 같은 이유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의문형으로 어미를 마치는 이유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영화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영화가 떠올라 혼란스러운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속 무언가 엉클어진 부분이 불현듯  영화를 내게 들이밀었고 그로 인해 나의 상황과 문제를 뚜렷하게 인지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나는 다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벌새의 주인공이 겪은 혼란은 비단 그녀가 어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전에 내가 그녀에게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라며 전해주고 싶다던 위로는 그녀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오만한 여유였다. 사실은 그저 나도 그녀와 똑같았기에 감정 이입을 했을 뿐이었다. 전해주고 싶었던 위로와 용기는  자신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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