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누마 'Home-for-All'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동북 방향으로 2시간 반을 달리면 센다이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입은 바로 그 지역이다. 원전사고가 있던 후쿠시마와 지역 열차로 1시간이면 닿는 거리였기에 누구도 추천하지 않았던 센다이를 일정에 넣은 것은 건축가 도요 이토의 모두의 집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모두의 집은 피해 지역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였다. 대지진으로 일상이 망가진 주민들이 소통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삶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도요 이토를 중심으로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이 모여 도호쿠 지역에 십여 개의 모두의 집을 지었다. 의도가 의도인 만큼 건축가들의 창작보다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진정으로 그들이 필요한 집을 짓는 것이 프로젝트의 주된 작업이었기에 주민들 간의 소통만큼 건축가와 주민들의 소통 역시 중요했다. 사진과 글로는 전달되지 않는 소통의 현장을 직접 느껴보고자 센다이로 향했다.
센다이는 도쿄에 비해 차분한 도시였다. 구름마저 햇빛을 가려 기차역 앞에 즐비한 높은 빌딩들이 칙칙해 보였다. 내가 찾아갈 모두의 집은 센다이 외곽의 미야기노쿠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읽을 수 없는 일본어로 쓰인 주소가 다였으니 어두운 하늘만큼이나 마음도 무거웠다. 바짝 긴장을 하고 센다이역에서 지역 열차로 갈아탔다. 기차는 도심을 빠져나가 낮은 주택들이 들어찬 지역을 지나 곧 미야기노쿠에서 멈추었다. 역 주변에는 지표로 삼을 만한 그 무엇도 없었기에 핸드폰의 지도만 믿으며 빠른 걸음을 놀렸다. 약 20여분을 걸으며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고 상점이라고는 편의점 하나밖에 보지 못했다. 사람이 사는 곳에 황량하다는 말이 불친절할 수도 있겠지만 참 황량한 동네였다. 모두의 집에서 휴머니즘 가득한 주민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지도가 가리키는 목적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류센터로 보이는 거대한 창고를 드나드는 트럭들과 철창으로 잠긴 공원뿐이었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공원 앞에 주저앉으려는 찰나 승용차 한 대가 맞은편 집에서 멈추었다. 밝은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차에서 내린 아주머니에게 모두의 집의 행방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러나 아들도 영어를 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느릿느릿 인터넷 번역기를 통해 한 문장씩 대화할 수 있었다. 곧이어 아주머니의 남편 되는 분도 나와 모두의 집에 대한 것으로 추측되는 이야기를 일본어로 쉼 없이 뱉어내셨다. 그러나 번역기에는 ‘재해 복구가 끝난 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작년에 철거했다’라는 간단한 문장만이 적혀있었다. 비록 모두의 집을 볼 수는 없었으나 일본인 가족의 친절 덕분에 먼 길을 찾아온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후에 알아보니 미야기노쿠 모두의 집은 철거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음 날 고민 끝에 두려운 마음을 안고 한 번 더 모두의 집을 찾아 길을 나서기로 했다. 이번에는 센다이 서쪽에 위치한 이와누마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모두의 집이었다. 이곳 역시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배차간격이 한 시간이나 되는 버스만이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었다. 다행히 이와누마에서 만난 친구가 목적지까지 태워주었으나 주소를 따라 내린 곳은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이었다. 삭막한 건물들 몇 채와 편의점 하나가 있었으나 고속도로만큼이나 휑한 곳이었다. 의심을 가득 품은 채 지도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몇 미터 걸어 나갔다. 그리고 갑작스레 모두의 집이라는 일본어와 MINNANOIE 가 적힌 나무 푯말을 마주했다. 이런 곳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기쁜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모두의 집의 문은 닫혀있었다. 처마 밑에 놓인 평상에 앉아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 푯말 뒤편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었고 그 왼편으로 진회색 맞배지붕을 가진 목조 주택이 같은 색의 처마를 얹고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내가 앉은 처마 밑 평상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작은 화단이, 공터 너머 맞은편에는 주차장이, 그리고 오른편 나무 푯말 뒤로는 바비큐 도구가 알뜰하게 차려져 있었다. 바로 옆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은 여전했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이제야 모두의 집 너머 주택가가 보였다. 이와누마 모두의 집은 지역 농산물 촉진을 목표로 설립된 만큼 주말에는 지역농산물 판매장으로, 평일 낮에는 카페로 변신해 주민들을 맞았다.
9시가 가까워지자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한 대가 연달아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젊은 여자 셋이 내렸다. 집 앞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온 그녀들은 서툰 영어로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서둘러 카페 문을 열었다. 목제가 주를 이루는 인테리어 덕에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 커피 한 잔과 지역 쌀로 만든 빵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역 행사와 모두의 집을 소개하는 알록달록한 포스터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의 집 준공식 날 찍은 도요 이토와 주민들의 사진도 보였고 주말 장터에 참여하는 농부들의 사진도 짤막한 소개와 함께 붙어 있었다. 나를 맞아준 그녀들과 번역기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다. 이와누마시에 살고 있는 그녀들은 모두의 집을 소유 관리하고 있는 인포콤이라는 회사에 정식 채용되어 카페를 포함한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인포콤은 도쿄에 위치한 IT 회사로 건축가들과 함께 이와누마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녀들의 말에 따르면 처음 도요 이토에게 이와누마를 소개한 것도 이 회사의 대표라고 한다. 카페가 이곳의 유일한 영리 활동이지만 판매 가격이나 위치로 보았을 때 그도 충분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의 이러한 의아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들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같은 특별한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연다며 원한다면 나도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름 그대로 모두를 위한 집이었다. 또한 매주 월요일에는 뜨개질이나 꽃꽂이 등 무료 강습이 열린다고 한다. 그녀들은 짧은 영어와 번역기를 이용해 아뜰리에에서 만든 작품들과 축제 때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환히 웃고 있었고 그 사진을 보여주는 그녀들도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일본어로 재잘거렸다.
201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일본관에 소개된 모두의 집은 프로젝트에 녹아든 휴머니즘이 높이 평가받아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그 발단부터 과정,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완성까지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라는 본질에 충실했다. 주민들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을 만나 대화했고, 또 지역의 지리적, 사회적 특징을 반영해 그들을 위한 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의 집의 완성은 주민들의 몫이었다. 재난 속에서 피어난 프로젝트지만 그 쓰임은 재난 상황을 벗어나 일상에서도 유효해야 한다. 휴머니즘이 특수한 상황에만 필요한 단어가 아니듯 말이다. 문제는 그 필요에 가장 적절한 응답을 찾는 것일 테고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를 이와누마에서 볼 수 있었다. 지역 농산물 촉진이라는 뚜렷한 목표와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프로그램이 주민들을 모두의 집으로 이끌었다. 이와콤에 채용된 직원들은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보람과 함께 금전적 보상으로 더욱 책임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주민들을 반기고 또 주민들의 참여가 그들의 수고를 격려하는 선순환을 이룰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서 이와누마 모두의 집은 지속 가능한 휴머니즘을 실현하고 있었다. 휴머니즘은 매우 이상적인 가치다. 그렇기에 그 이상을 현실에 발붙이게 하기 위해 그 이상의 것을 고민해야만 한다. ‘좋은 것이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는 이상을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