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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아 Sep 30. 2021

얼레리 꼴레리- 우리 엄마 아부지의 사랑 이야기

의래와 기숙이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

 오늘은 저의 주간 업무 중 하나인 호락호락 카카오 음 대화방이 있는 날 입니다. 대표님은 매회 주제 선정 및 기획에 대한 모든 것을 제게 일임하셔서 저는 전반적인 사전 준비를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다 편안한 수다가 될 수 있도록 가상 꼬리 질문들과 전반적인 흐름의 구상을 짜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대본 없이 진행되는 말 그대로 생방송 라이브지만 혹여나 스피커님들 중에 어울리는 질문이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면 좋을 지 등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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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화방 주제는 '우리 엄마 아빠의 연애 이야기' 입니다. 메인 스피커로 참여하시는 분들의 결혼 전 연애담을 가볍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풀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또한 폭 넓게 우리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스피커님들께 미리 가이드를 드렸죠. 보통은 저는 진행자라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지만, 오늘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수다가 될 것 같아서 저도 간단히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경상도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안동, 어머니는 문경에서 태어나셔서 20대 상경 후 두분 모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셨죠. 두 남녀의 만남은 등산동호회였습니다. 에너제틱한 아버지 어머니는 등산 동호회 모임과 번외로 두 분의 데이트를 위해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셨고, 그렇게 인생의 산을 같이 오를 동반자를 찾으셨습니다.


남은 사진으로 보아 짐작컨대 저희 아버지는 준수한 미남형도 아니고 키도 크지 않으시며 체격도 호리호리 하셨습니다. 객관적으로 제가 20대 때 아버지 같은 스타일을 만났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스타일입니다.(아버지, 사랑해요) 그에 비해 어머니는 키도 크시고, 늘씬하시며, 패션 감각도 뛰어나고, 서구형 마스크에 얼굴도 뽀얀 누가봐도 미인형 얼굴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는 뭐가 그리 좋아서 아버지와 결혼을 결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저희 외할머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겨우 설득해서 결혼을 강행하셨지요.


저희 아버지는 술을 한 잔만 입에 대도 얼굴이 빨개지시는 전형적인 알쓰(신조어_알콜 쓰레기의 줄임말)였습니다. 반면에 저희 외가는 외할머니를 제외하고 황씨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이 술꾼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지금 제 외삼촌들 앞에서 여러번 떡실신이 되셨고, 외삼촌들은 아버지의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짠해서 결혼을 허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랬던 아버지가 지금은 주말 2박 3일동안 반주를 즐겨하시는 애주가가 되셨습니다. 제약회사 영업 부서에서 오래 일하셨던 아버지는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각종 접대와 회식으로 체질을 극복한 술꾼이 되셨습니다. 90년대 초반, 늦은 밤 서울 동교동 골목길에서 귀가 전 여러번 개어내고 다음날 불편한 속으로 또 출근하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저희를 키워내셨죠.


아버지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참 의견대립이 잦았습니다. 유년기의 제가 종종 목격했던 부부싸움은 참으로 치열했고 장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두 분은 서로에게 잔소리 하시는 것을 낙으로 삼고, 매일 크고 작게 일어나는 전투를 소소한 안주거리로 삼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서로 죽고 못살듯이 싸우셨는데도 지금은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되셨는지 참 아이러니합니다. 주말에 친정을 가면 아버지는 이미 거하게 걸치신 약주로 얼굴이 벌개진 상태고, 어머니는 '아이고 저 술주정뱅이'하면서 궁시렁대고는 맛깔스런 안주를 만들어내십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갈굼이 듬뿍 들어간 골뱅이 무침을 드시며, 또 어머니에게 반격을 가하십니다. 결국 어머니는 핀잔을 10절까지 늘어놓으시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BGM으로 삼아 또 술 한잔을 따르십니다. 남편은 이런 장인어른 장모님이 귀엽다합니다.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 아직 제게는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야 이 모습을 삼십년 넘게 봐와서 익숙하지만 우리 남편은 장인 장모님의 티키타카가 참 아이러니했을겁니다. 저희 부모님은 결혼 후 35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싯 셋(심지어 막내는 완전 늦둥이)을 키워내며 삶의 크고 작은 산들을 등반하셨을겁니다. 그 산의 등반자이자 동반자였던 서로를 죽을만큼 미워했지만, 죽을만큼 싫어하시진 않았나봅니다.

저 역시 결혼 후 남편과 자주 티격태격합니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에게 너무 크게 실망해서 헤어지고 싶을 만큼 힘든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마가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했죠. '그래, 그렇게 너 죽네 나 죽네 하며 살던 엄마 아부지도 헤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얼마 전 친정 엄마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마무리하셨기에 안부 차원상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죽을 만큼 사랑하진 않지만 서로가 죽고는 못사는, 서로가 꼭 있어야하는 그런 사이인가봅니다. 진짜 얼레리꼴레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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