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유산소 말고 공복 글쓰기
새벽 기상은 힘들다. 전날 밤 아무리 일찍 자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밤 9시 정도 아이가 잘 때 같이 잠드는 것인데, 실상 집안일의 잔업을 그냥 두고 자는 것이 쉽지가 않다. 요 며칠 재택근무하면서 육아와 살림까지 혼자서 맡아했던 터라 더 시간을 쪼개 써야 했다. 늘 업무가 있었지만, 요즘 같이 프로젝트로 일이 더 몰릴 때는 새벽의 글 쓰는 이 시간조차도 마음이 다급할 뿐이다. 새벽의 고요한 적막을 좀 누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사색을 즐기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겨를이 없다.
스스로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100일의 여정이 오늘 차로 53일차다. 약 절반 정도를 달려온 셈인데, 새벽은 늘 불편하다. 어렵게 일어났으니 컨디션이 좋을 리 없고, 아이 기상 전 글을 발행하기 위해 300%의 힘을 쏟아내다 보니 6:30(글 발행 시각) 이후의 체력은 더 방전된다. 약 절반 정도 해왔으니 이제 익숙할 법도 한데, 여전히 익숙지 않다. 미라클 모닝의 미라클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았다.
진짜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구태여 이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하며 걸어온 새벽을 다시 뒤돌아 볼 때도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새벽을 깨어왔다. 한 편생 쓸 때 없는 오기와 알량한 자존심으로 살아왔는데, 가끔 그 오기와 자존심은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되곤 한다. 혹시 모른다. 백일의 여정을 완주하면 쓸 때 없는 오기는 남들에게 내세울법한 끈기가 될 테고, 알량한 자존심은 든든한 자긍심이 될 지도.
불편한 새벽 덕분에 처음으로 글을 꾸준히 써봤다. 올해 하반기, 업무 분위기 때문에 (마지못해)엉겁결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글 발행을 자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새벽 루틴을 시작하다 보니 자꾸 흔적이 남고 오늘 살짝 뒤돌아 보니 꽤 쌓인 기록이 되었다. 아직은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는 글들이겠지만, 언젠간 화이트 크리스마스마스 아침의 눈처럼 두텁게 쌓여 내 마음의 포근함을 줄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
어디서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로 절대 빠지지 않는 나다. 새벽 글쓰기도 전형적인 사서 고생을 자처했던 것 중 하나. 이미 30년 넘게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100일 후 '저렇게' 또는 '그럴듯하게' 바뀌긴 힘들 것이다. 쑥과 마늘을 먹을 만큼의 인고도 아닐뿐더러 고작 100일로 인간이 개과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일을 버티는 이유는 하나다. 매일 애쓰며 낑낑대는 모습을 뭐라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멈추지 않고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발악하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드라마 <인간실격>의 한 대사처럼 '마흔이 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던 나 자신'에 대해 야박하지 않고 관대하려면 이런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오늘도 편하지 않은 새벽을 열었다.
- 공복 글쓰기 / 조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