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업 노트

28x35cm

잘 가, 아빠.. 먼저 천국에 가 있어. 더 이상 아프지 마.



28×35cm.

사이즈에 맞춰 종이를 잘랐다. 영정사진의 크기다. 그다음, 핸드폰 속 사진을 뒤적이며 아빠가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골랐다. 지금 나는 영정사진으로 사용할 아빠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병원에서는 아빠의 몸속 암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도 아빠는 나와 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고맙다고 해주었다. 엄마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고맙다’는 말은 엄마에게는 한 번도 해주지 않아 섭섭한 마음을 쌓이게 하면서도, 나와 언니, 사위들, 그리고 손주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몇 번씩 하는 자상한 아빠다. 전화를 끊으며, “아빠, 그 ‘고맙다’는 말… 나 말고 엄마한테도 좀 해줘.”라며 웃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마주하는 아빠의 암세포 사진은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마치 DSLR, 핸드폰, 폴라로이드 등 다양한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볼 때마다 새로운 사진으로 암을 확인시킨다. 사진은 매번 다르지만, ‘쿵’ 하고 내려앉는 절망감은 언제나 같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이마의 주름살을 출렁이며 사무적인 말투로 설명하는 의사의 목소리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이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말투를 들으려고 어렵게 예약을 잡고 이 시간을 기다린 건가 싶다. 수백 번 죽음을 마주한 사람의 여유란 이런 것일까. 그러다 문득, 많은 환자를 상대하느라 그럴 거라고 이해해 보려 한다. 피곤한 얼굴의 의사를 바라보며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네, 네.” 대답한다. 그건 온전히 아빠를 위해서다.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아빠에게 보이고 싶어서다.


클래식 CD를 골라 CD 플레이어에 넣는다. 가족들 누구도 모르게, 혼자만의 시간에 아빠의 얼굴을 조금씩 그려나간다. 평소에는 라디오나 뉴스 채널, 유튜브를 틀어놓고 작업하지만, 아빠를 그리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아빠가 활발히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그의 작업방 오디오는 늘 클래식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는 방에서, 아빠는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그림을 그렸다. 아무도 모르는 이 시간, 나는 클래식을 들으며 그때의 아빠와 현재의 아빠를 동시에 느껴본다.


사진 속 아빠의 눈을 들여다본다. 코를 보고, 입을 본다. ‘쌍꺼풀이 이렇게 짙었었나? 입술이 이렇게 얇았었구나.’ 새삼스럽게 아빠를 다시 본다. 이렇게 오래 아빠의 얼굴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아빠가 아프고, 암이 많이 진행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보고 있다. 샤프펜슬로 톤을 쌓으며 그림의 밀도를 높인다. 피부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숨을 참는다. 아빠의 눈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또다시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정사진을 준비하는 내가 불효자인가 싶다. 마치 아빠의 죽음을 기다리는 딸처럼 말이다. 하지만 효인지 불효인지 확실한 판결을 내리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내 마음이 아빠를 그리라고 한다.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아빠의 모습을 이제야 그려보라고, 가슴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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