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업 노트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 흔적 > 33.4x45.5 cm_ 종이에 샤프, 수채물감_ 2024_ 윤미내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는 일은 고통스럽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되돌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죄책감이 함께한다. 내게 허락된 생명이라는 것을 언제나 마땅하게 여겼지만, 세상을 떠난 이에게는 마지막 한마디, 전하고 싶은 미안함, 간절한 당부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례식에 다녀오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한동안 상념 속을 헤매게 된다. 저마다 호기롭게 삶을 살아가지만, 죽음의 순간은 어떤 저항조차 통하지 않고 일말의 결정권도 없다. 그런 인간의 무력함이 느껴져서인지 결국 삶이란 것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별안간 세상을 떠난 젊은이의 죽음이건, 호상이라 부르는 노인의 죽음이건, 삶의 끝은 언제나 허망하다. 남겨진 이들은 애도를 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자신의 삶에 스며들고, 죽음의 그림자도 점차 희미해진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죽음은 그렇게 적응되는 것이다. 그 사실이 한동안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장례식에 돌아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자, 삶에서 무의미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언제고, 누구든, 공허하게 사라질 것이라면, 이 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 삶을 덜 허망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후손에게 가치 있고 위대한 유산을 남기는 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싶다. 미움과 질투,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끝없는 욕망.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 채우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삶에서 부정적인 것들의 무게만 덜어내도, 마지막 순간에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지배하는 거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정갈한 정신 하나만 남긴다면, 생의 마지막 걸음도 미련 없이,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마침표인 죽음은 삶에서 무가치한 것을 제거하며 죽음이 주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항할 줄은 아마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죽음에게 그런 당혹스러움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계획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조금 더 과감하고 담대하게, 인생의 짐을 가볍게 덜어내며 죽음을 향해 걸어가 볼 생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8x3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