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떠나보낸 뒤, 삶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애쓰지만, 마치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 드러난 모래사장의 흔적처럼 허전하기만 하다. 일상은 같은 속도로 흐르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나를 부르지만,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듯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아빠가 잠시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잘못 접힌 색종이처럼 어긋나 있어, 무엇이 분명한 선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아빠의 장례 후, 3주 만에 다시 운동하러 가는 날이었다. 마음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지만, 깊은 슬픔에 잠식된 몸은 결국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겨우 몸을 일으켜 헬스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익숙한 공간. 그런데 그곳에는 동네 언니의 아버지가 운동을 하고 계셨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가만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언니는 딸 친구의 엄마이다. 나보다 두 살 많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친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사이다. 그녀의 부모님 또한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계셔서 마주칠 때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내가 헬스장을 나오지 못한 3주 사이, 언니의 아버지는 이곳에 회원으로 등록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운동하는 틈틈이 그분의 모습을 곁눈질했다. 곧게 뻗은 허리, 연세에 비해 탄탄한 체격. 건강하고 단단한 존재감이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어린아이처럼 부러움이 차올랐다.
‘언니는 좋겠다… 아빠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계셔서…’
그 생각이 스치자 감정이 봇물처럼 터졌다. 헬스장 거울 앞에서 한순간에 눈물이 쏟아졌다. 아빠를 떠나보낸 후, 내 눈물은 언제나 눈앞에서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왕-”하고 쏟아질 준비를 마친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아빠를 잃은 내가 2kg짜리 아령을 양손에 들고,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눈물이 오른쪽 뺨을 타고 흐르다가 다시 왼쪽 뺨으로 흘렀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거대한 구름 뒤로 멀어진 아빠의 부재는 세상의 빛을 조금씩 바래게 한다. 그러나 또다시 아침이 오고, 눈을 뜨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사실이 낯설고 허망하다.
눈물을 닦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아빠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가야 하니까.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발갛게 충혈된 눈이 어색했지만, 그 안에는 아빠의 흔적이 함께 있었다. 내 눈물, 내 숨결, 내 몸에 남아 있는 아빠의 가르침과 기억들.
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을 나서는 길, 아직은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봄의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쌌다. 눈을 가늘게 뜨게 만드는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아빠가 떠올랐다. 길 위의 그림자들은 조용히 흔들렸다. 돌담길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속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아득한 웃음소리 속에서, 아빠를 떠올렸다.
시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제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이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삶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리고 아빠의 존재는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순간에서 또 다른 흔적들로 나를 부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 시간의 자락마다, 그는 내 곁에 스며들어 나를 감싸고 머물 것이다.
나는 아빠를 기억하며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