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업 노트

그림을 선물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이 보이나요> 34.8x24.2cm_ 종이에 샤프펜슬, 수채물감_ 2024 윤미내


어떤 날은 그런 말이 농담처럼 건네진다.
“나도 좀 그려줘요.”
그럴 때면 대답 대신, 짧은 미소로 그 순간을 넘긴다. 내 손이 움직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그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 준다는 의미 같아서 그 말이 따뜻하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에 담긴 가벼움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무심함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그림을 그려 선물하지 않기로 했다. 한때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건네며, 그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와 그림을 받아 들고 감탄하던 반응이 커다란 기쁨이자 성취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 사실은, 사람들은 쉽게 얻은 것을 쉽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인 시간과 정성, 손끝을 따라 흘러간 호흡과 감정, 재료를 마련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조차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올리지 않았다. 그림은 그저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재능은 종종 공짜로 여겨지고, 그림은 쉽게 잊혀지거나, 버려지고, 그림자처럼 취급되고는 했다.




우리는 꽃가게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꽃다발 하나 선물해줘.”라고 아무렇지 않게 청하지 않는다.

혹은 고깃집을 하는 이의 가게에 가서, 돈을 지불할 생각도 없이

“고기 좀 줘봐요.”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림 앞에서는 그런 부탁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림 역시 꽃과 음식처럼, 누군가의 시간과 손끝에서 태어난 물질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사람들은 유독 그림 앞에서 재능을 나눠달라 말한다. 음식과 꽃이 누군가의 노동과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듯,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지 손재주가 아니라 내 삶이고, 생존이며, 한 줄 한 줄 시간과 감정을 녹여내는 언어로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그림의 가치를 더 이상 가볍게 다루지 않겠다고. 그 안에 깃든 시간과 감정, 재능을 더는 공짜로 내어주지 않기로 말이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기까지는 수천, 수만 번의 선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림은 단지 그려준 결과물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로 만든 풍경이며, 소중한 시간의 조각이고, 솔직한 나의 일부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생업이고 존재의 방식이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재능은 선물처럼 주어졌지만 그 재능을 지키기 위해 들인 수많은 날들과 노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림도, 나의 시간도, 나라는 사람도. 그 어떤 것도, 그냥 주어지는 법은 없다고 말이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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