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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Sep 27. 2021

N잡러는 아닙니다만.

성장에 대하여

”놀면 뭐하니“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유재석이 혼자 다양한 부캐로 변신해 그 안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변주해가는 포맷이다. 지금까지 유재석이 도전한 부캐만 해도, 유산슬, 유르페우스, 닭터유, 지미유, 카놀라유, 유야호 등 수십 가지가 넘는다.      


현실은 예능보다 더욱 치열하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쇼핑몰, 유튜브, 강의, 글쓰기, 자투리 시간과 노동력을 활용한 배달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월급에만 기대지 않겠다는,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올 순간을 위해 대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부동산, 주식 등 돈 공부에 매진하고, 자신의 재능을 찾기 위해 항상 깨어있는 사람들. 말그대로 N잡러, 부캐, 멀티페르소나 전성시대이다. 결국, 이런 트렌드는 ”성장”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에 수렴한다.     


엄마들도 ”성장“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

얼마 전 김미경 강사님이 운영하는 mkyu라는 사이트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들을 위한  다양한 강의와 담론들이 오가는 유튜브 대학으로, 말그대로 열정 대학생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투자, 살림, 교육, 기술, 블로그, 유튜브, 공구 등 성장하는 엄마로 살 수 있는 강의들을 총망라해놓은 곳이었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라는 책의 저자이며 트렌드 전문가인 김용섭 소장 역시 투잡이든 스리잡이든 할 수 있다면 꼭 하라!고 하며, 평생직장, 종신고용이 사라지는 시대에 겸업과 부업이라는 노동형태가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한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도 겸업 허용은 더욱 유연한 고용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서 이득이라고 한다. 필요한 인력과 필요하지 않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들여보내고 내보낼 수 있어 덜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기업문화의 관성이 무너지는 와중에 기업과 개인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며 수많은 N잡러가 탄생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N잡러가 될 깜냥도, 에너지도 없는 사람이다.

체력은 빤하고, 에너지는 한정적이며, 자투리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mkyu에서 제공하는 글쓰기 강의에 관심이 있어 들어갔다가도 수백가지 강의에 기가 죽어 “워~워~잠시만~”하고 뒷걸음질치며 나와 “내가 과연 저것을 다 할 수 있는가” 하는 다짐만 수십 번을 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돈 공부,SNS활용법, 테크놀로지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알기에, 때론 조급하기도 불안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하는 것은 자투리 시간에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다이다.      


이런 시대에,

엄마라는 내 자리를 지키며,

우직하고 진득하게,

스러져가는 책과 글을 보듬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성장이 아닌가?

그저 게으른 자의 합리화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N잡러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향해 갈 것이다.

나에게 성장이란, 좋아하는 마음을 일정 선까지 유지하며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나는 어제의 나보다는 오늘 좀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방향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목마른 사람이다.      


분수와 우물이 있다.

분수는 화려하다.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넘쳐 흐르고 다양하게 모양을 바꾸며 주위를 즐겁게 한다. N잡러는 분수 같은 사람들이다.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여러 방향으로 팡팡 넘치고, 트렌드에 맞춰 모양도 바꾸며 세상에 대응한다.

우물은 한 방향으로 긷고 긷는 일 뿐이다. 우물 안 물이 마를 때까지 그저 품고 있는 물을 내어줄 뿐이다. 

나는 우물 같은 1잡러가 되고 싶다.
그저 한 방향으로 물을 긷고 길을 뿐이다.
그렇게 내 안에 물이 마를 때까지 누군가에게 물을 내주다보면,
내 글도 누군가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가닿지 않을까.

세상엔, 분수도, 우물도 필요하다. 1잡러에게도, 아니 “잡”이라고 부를 수 없는 0잡러의 가치에도 누군가는 귀를 기울여주길 바라며, 오늘도 트렌드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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