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를 보고
요즘 스우파,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있다. 말그대로 길거리에서 만나면 주춤주춤 뒷걸음질 칠 것 같은 세보이는 여성 댄서들이 춤으로 대결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성 백업 댄서’라고 하면 섹시한 몸짓이나 의상으로 아이돌을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역할에 국한되어 주어지니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그 여성 백업 댄서들을 무대 중앙으로 끌어낸다.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만의 무브와 그루브에 주목해주는 무대. 그리고 그 안에 각 크루만의 색깔과 리더쉽, 크루원들의 서사가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생글생글 웃는 웃음 속에 탄탄한 실력을 갖춘 YGX의 리정, 실력으로 보나 인성으로 보나 뭘로 봐도 여성 힙합계의 여왕급인 홀리뱅의 허니제이, 다양한 색깔의 춤을 보여주는 프라우드먼의 모니카, 섹시한 여우가 생각나는 라치카의 가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훅의 아이키 등 8개 크루리더의 다채로운 캐릭터만 보고 있어도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스우파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했던 속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금까지 “백업” 댄서로서 누군가의 뒤에서만 서던 그녀들이 무대 전면에 등장함으로서 기존의 위계가 전복되는 듯한 카타르시스. 조신한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를 “내조”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길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듯한 틀을 깨부수는 듯한 그녀들의 말과 몸짓에서 희열을 느낀다.
누군가는, 문신과 체인, 피어싱으로 몸을 휘감고 말을 툭툭 던지는, 쎈(센거 아니고 쎈) 언니들(멋있으면 언니들이니까)에 대해 오히려 삐딱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꼭 저렇게 쎈 척 해야 하는 거냐며 말이다.
그녀들은, 쎄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하게 보이고 크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으니까. 실력만으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세계에서 쎈캐는 옵션이 아닌 필수였을지도 모른다.
딱 하나,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무대를 판정하는 저지들이 모두 가수 혹은 아이돌이라는 점이다. 댄서와 가수는 너무나 다른데, 댄서들의 무대를 심사하는 것이 결국 가수들이라니. 기껏 위계를 무너트려 놓고선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과를 범하고 있다. 그녀들의 춤을 누군가 평가한다면, 그건 댄서도 인정하는 댄서들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면에서 저지들이 나올 때마다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전형적이지 않은데 저지 부분만 너무 빤하니 그럴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시원시원한 무브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함께 춤을 추고 싶어진다. 또한 연골이 닳도록 춤을 추는 그녀들처럼, 나만의 무언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해보고 싶어진다. 화면 밖에서도 열정에 감응할 수 있게 해준 크루들에게 고마움을, 댄서들을 무대 중앙으로 이끌어 주고, 여성들만의 서사로 프로그램을 꽉꽉 채워준 제작진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