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두고 매번 친자 확인을 하는 엄마들에게
나 : “그거 아니라니까~ 아까 설명했잖아. 에휴. 그만하자 그만해”
아이 : “(징징 대며) 아니야~ 나 할 꺼야, 할꺼라니까!!!!”
오늘도 학습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다.
많이 공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매일 연산 문제집 1장 풀라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초등 3학년을 앞두고 있다 생각하니, 지금까지는 “괜찮아 아직 저학년이잖아” 생각했던 마음 사이로 불안과 조급증이 조금씩 새어나오는데, 아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런 모습을 보다가 살그머니 연산 문제집을 들이밀었는데, 오늘도 결국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학습이 다가 아닌걸. 하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무심코 켠 SNS 속에, 경시대회를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아이, 독해부터 수학 심화까지 몇 십권의 문제집을 풀어낸 흔적들, 무슨 영재원 합격 후기 등이 주르륵 올라온다. ‘엄마표’로 준비했다는 코멘트와 함께.
엄마표 학습은 아이의 그릇에 맞춰서 진행할 수 있고, 아이와 애착이 가장 큰 엄마와 함께 하므로 아이의 마음도 잘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다. 그래서 엄마표 학습을 잘 시키는 엄마들, 그것을 따박 따박 잘 따라가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동시에 나는, 내 아이는 왜 그렇게 안될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불안감으로 아이를 붙잡고 앉혀보지만, 막상 진행하다보면 ‘왜 이걸 이해못하지?’ 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나곤 한다. 엄마는 여러 일상에 쫓기는 데다가, 가르치는 노하우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아이를 가르쳤을 때 화가 나면 친모고, 아니면 계모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불편한 내면을 한참 들여다본 후 내린 결론은, 아이의 성과는 엄마의 성과가 아니고, 엄마표만이 아이의 학습을 끌어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고, 선생님이 될 수도 없다. 아이를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는 엄마의 일과에 ‘학습’까지 의무로 얹지 않으려 한다.
‘교육은 아이의 발달에 적합해야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육에 적극적으로 개입된 엄마의 성향은 대부분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왜 그 노오오오오력이라고 불릴만한 애씀에, 엄마에 대한 고려는 없는 것일까. 아이와 함께 공부할 때 엄마도 행복하고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와의 관계 뿐 아니라 엄마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다른 방법을 찾자.
덧붙이자면, ’엄마표‘ 교육이라는 단어도 바뀌었으면 한다. 엄마 밥이라 하지 않고 집밥 이라 하고, 마더메이드가 아닌 홈메이드라 하는데 왜 학습만 ’엄마표‘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가. 아마도 엄마표 라는 말에는 엄마의 온기와 애정이 가미된 학습이라는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 엄마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사랑이 학습에까지 가닿았을 때 아이가 정서적으로 다치지 않으면서 학습적으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있다. 명칭이 곧 그 단어의 정체성이라면, 엄마표라는 말은 바뀌어야 마땅하다. 외래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홈스쿨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요즘 아이는 필요한 과목을 학원에서 배운다. 노하우 있는 선생님에게, 비슷한 진도/수준의 친구들과 수업을 받고 온다. 엄마와 공부할 때보다 훨씬 누그러진 분위기에서 배우고 오니 그 과목에 대해 오히려 긍정적인 정서가 생겼다. 나 역시 한결 마음의 짐을 덜어낸 기분이다. 아이의 학습이 숙제로 느껴지는 일이 덜하다. 대신 집에서는 학교, 학원에서 메워줄 수 없는 것들에 주력한다.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 독서나 연산 (아직도 이 연산으로 씨름중이긴 하다), 대화를 통한 인성교육, 생활 습관 정립하기 등에 나의 에너지를 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은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엄마표’의 주체인 엄마가 힘든 엄마표 교육은 의미가 없다. 엄마가 매번 아이와 책상에 앉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도 그 스트레스를 금세 인지하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 아이와 엄마의 정서를 위해서도 엄마표 학습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음식을 아무리 떠먹여주어도 먹는 사람이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소화가 될 리 없다. 아이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대신 음식을 씹어서 입에 넣어줄 순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그것을 소화시킬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이다. 엄마가 음식물을 더 잘게 못 부숴주었다고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