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행은 이전의 여행과 준비부터 다르다
한파로 몸도 마음도 으슬으슬한데, 예정해놓았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남편은 부서 이동으로 정신없이 바쁘니 혼자 종종거리며 여행 준비를 한다. 엄마의 여행 전 to-do list는 겉보기엔 단순하다. 청소, 빨래, 냉장고 확인, 짐싸기. 그런데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냥 여행 가지 말까? 하는 마음이 울컥 솟아오를 정도로, 엄마는 바쁘다.
우선 청소를 한다. 간단하게 쓸고 닦고 마무리
다음으로 빨래. 날이 추워서(여행지도 하필 강원도!) 아이들 옷가지가 많이 필요하다. 내복에, 장갑, 모자도 챙기고, 여행 가기 전에 옷을 빨고 건조해야 아이들 입힐 옷이 나오니 세탁기를 하루에 몇 번을 돌렸는지 모른다. 거기에 이불 시트까지 빨아서 집 비울 동안 마르게 널어놓으면 끄읕!
가장 중요한 냉장고 확인.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은 해치우고 냉동칸으로 옮길 것은 옮겨둔다. 귤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딸기를 먹여야 겠다. 금딸기를 사놨는데, 안 먹으면 여행 갔다와서 다 무를게 뻔하다. 아참, 다녀와서 먹을 국을 하나 끓여야지 싶다. (이쯤되면 직업병이다. 그냥 갔다오면 되는 것을.. ) 여기저기 식당음식에 물릴 때쯤 집에 돌아와 msg 들어가지 않은 홈메이드 국물을 호로록 먹을 생각을 하니 포기할 수가 없어서 멸치 육수를 내고 재료를 손질해서 국을 하나 끓인다
자 이렇게 음식 체크하고 아이들 밥주고 치우고 돌아서니
거실이 다시 엉망.
오.마이.갓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래 여행이고 뭐고, 가지 말자.
어느 정도 포기하고, 빨래를 개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 가기 전에 음쓰랑 일반쓰레기도 버려야지.
이건 넣었나? 저것도 넣어야 될 것 같은데!
엄마의 to-do list는 떠나기 전까지 줄지 않는다.
몸만 훌쩍 떠난 여행이 언제 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집의 주인이 된(가만...관리자인가!?) 이후부터,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는 여행 준비를 할 때 항상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다. 몇번의 경험으로 특히 아이와 관련한 물품, 먹고 입고 싸는 물품을 빠트리면 혼이 나가는 건 결국 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물품으로 가득 찬 캐리어에 이런 엄마의 노력이 덕지덕지 묻어있다는 걸 가족들은 알까? 나도 엄마가 되기 전엔 몰랐으니, 그들도 모르겠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까지 움직이는걸까. 아마도 일상의 티끌과 허물을 되도록 닦아내고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와 집의 안락함을 온전히 더 느끼고 싶기 때문인게다. 다시 설거지와 빨래, 먼지들에 둘러 쌓일 지라도 돌아왔을 때만큼은 집에 포근히 안기고 싶은 마음. 결국, 여행은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 잘 떠날 준비를 마쳤으니, 잘 돌아올 일만 남았다!
* 여행 가기도 전에 준비하느라 지친 자의 고찰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추운 날은 집에서 이불에 쏙 들어가서 좋아하는 유튜브나 영화나 한편 보면 거기가 바로 최고급 호텔입니다. 저는 곧 떠납니다. 취소 수수료도 있고, 아이들이 너무 손꼽아 기다렸던 여행인지라. 막상 떠나면 또 좋겠죠? 추운날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