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말하기
2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쓴 몸이다 보니 여기저기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2년 만에 4킬로나 살이 찌다 보니(나도 검사결과를 보고 알았다.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코로나...) 결과가 안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콜레스테롤 수치, 비만도 등등 거의 모든 수치가 안좋아졌다.
건강도 그렇지만, 미용적으로도 늘어난 몸무게는 도움이 1도 안되었다. 아이들이 “엄마 엉덩이 엄청 커ㅋㅋㅋ” 하며 놀리고, 입던 옷이 안 들어가는 등 자존감이 나날이 곤두박질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날들 속에 얼마전 가족들과 나들이를 나섰다. 날씨도 좋고, 나들이 간 공원에 이쁜 꽃밭이 있어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노란 해바라기, 이름 모를 들꽃들, 낭만적인 핑크뮬리 등. 이런 데 왔으니 인생사진 한번 남겨야지 하며 찰칵 사진을 남겨왔다.
집에 와서,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왠 퉁퉁한 아줌마가 있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살이 너무 많이 쪘지?” 그랬더니 우리 남편 사진을 들여다보고 말한다.
“햇살 때문에 얼굴에 음영이 져서 그런 거 아닌가” 무심하게 한마디 툭.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 “아닌거 같아.. 나 너무 뚱뚱해졌어” 굳이 한마디를 보태본다.
우리 남편, “나이가 들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그런거래”
두두둥....
그런거래...살찐거래...
그냥 아니라고 해주면 안되겠니..굳이 기초대사량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는거니.
남편의 말 한마디에, 내 자존감은 또 바닥을 친다.
우리 남편은 참 착한 사람이다. 내가 집안일로, 육아로 힘겨워할 때 항상 도와주려고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기댈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좋은 사람이지만 이럴 땐 좀 맥이 빠진다.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른달까.
거울을 보며 “여보 나 주름이 많이 생겼어. 늙었나봐” 하니
“환절기라 건조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니까 물 많이 마셔” 하는 남자.
여보, 내가 원하는건 그저 “아니야. 그렇지 않아” 라는 한마디야.
“당신은 여전히 예뻐”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구!
이럴 때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 자체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법 전문가에 따르면, 남자들은 태고적부터 ‘사냥꾼’ 모드가 탑재 되어있다보니, 비바람 속에서도 짐승 발자국 소리를 골라 들으며 자기의 일에 몰두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이런 본능은 부부간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사냥을 더 잘 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습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여자들은 그저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길 바란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그로 인해 안정감을 얻고 싶은 마음에 말을 거는 것이다. 나와 남편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이 아닐지라도(미안해 여보. 사실이 아닌 걸 강요해서;;), 공감을 원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나 역시 남편을 이해하고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화를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육아서에서 아이에게 ‘나-메세지‘로 대화하라는 내용을 자주 접했다. 아이가 장난감을 치우지 않아 집이 엉망이 되었을 때, “너는 왜 그렇게 정리를 안하니?”라고 타박하기 보다는, “진우가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엄마가 속 상해”라고 ‘나‘를 주어로 하여 나의 감정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메세지‘로 이야기하면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진솔하게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남편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는 내가 정말 뚱뚱하고, 못생겨질까봐 걱정 돼. 그게 아니라는 여보 말을 듣고 싶었어”라고 이야기해볼까 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남편이 내 마음을 일일이 읽어주길 기대하지 말자.
대신, 말투는 부드럽고 낮은 톤이어야 한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은 부부 상담을 시작한 부부가 이혼할지, 관계가 좋아질지를 예측하는 인공지능(AI)를 개발했다고 한다. 연구를 위해 부부가 나누는 음성자료를 입력했는데, 대화의 실제 의미를 입력하지 않고 얼마의 시간을 대화했는지, 언제 어떤 억양으로 나누었는지만 분석했다. 차후 관계를 회복한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를 비교했더니 생각보다 AI가 신뢰도 높은 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평소 대화를 나누는 시간과 언성을 높이지 않는지 여부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과의 상관관계가 꽤 높았던 것이다. 불평하듯, 비난하듯 공격적인 말투로 이야기를 건네면 방어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오늘은, 남편과 눈 마주치고 부드럽게 내 마음을 전하리라 다짐하며.
여보 사...사.. 사ㄹ (말잇못)
* 사진출처 : 픽사베이, 금쪽같은 내새끼
일부 내용은 중앙일보 18.3.30 기사를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