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달 Nov 22. 2021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람이 쌀쌀해지는 이맘때면 “아, 김장할 때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야 양가 어머님들이 다 준비해놓으시면 잠깐 가서 양념을 치대는 정도가 다이지만 말이다. 김장할 때쯤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명 있다. 바로 우리 할머니이다.     


김치 하면, 자동적으로 할머니가 생각난다. 나는 사실 최씨 성을 가진 첫 번째 손주였지만, 딸이었기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기억은 없다. 특별히 나를 이뻐해주시거나 챙겨주신 기억도 없다. 하지만 속으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몰라도, 할머니는 항상 나를 포근하고 따스하게 대해주셨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면 “아이고 야야 우리 손주 왔나” 하며 반겨주시던, 항상 뽀얗고 살결이 보들보들하던 우리 할머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절에 가서 기도하시고, 운동하시고, 3남 2녀 키우느라 하루도 손이 물에 닿지 않은 적 없이 억척같이 살아내던 우리 할머니.     


명절에 할머니집을 가면, 싱싱한 해산물과 소고기, 두부 등을 잔뜩 넣어 한 솥에 끓인 탕국냄새가 마당에서부터 진동을 한다. 지글지글 끓던 방바닥에 누워 사촌들과 노란 옷 입고 나란히 줄 선 동그랑땡 하나, 속살을 뽀얗게 드러낸 생밤 하나 부엌에서 가져와 먹으며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로 상을 내오신다. 정성 가득한 탕국부터 각종 반찬들 속에 유난히 거무튀튀해 보였던 할머니의 김치. 할머니 그 김치 한조각이면 제사 음식 특유의 느끼함과 더부룩함이 소화제를 먹은 듯 싹 씻겨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다른 반찬이 없이 할머니의 김치 하나만 있어도 꿀맛이었다.     

할머니의 김치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이미지도 찾을수 없었기에..

할머니의 김치는 다른 누군가의 김치와도 달랐다. 색상이 일단 거무스름해서 눈으로 맛있어보이는 김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한번 맛을 보면 그 깊은 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껏 살아오며 많은 김치를 먹어봤지만, 단 한번도 할머니의 김치 비스므리 한 김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럴만도 한게, 할아버지가 수협에서 일하셨기에, 할머니가 김치를 담그기 전부터 할아버지가 직접 각종 싱싱한 멸치와 해산물로 젓갈을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그야말로 홈메이드 젓갈에 할머니의 손맛이 가미된 김치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깊은 맛이 났으리라.     


그런데, 이제 그런 김치를 먹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쓸쓸히 돌아가셨고, 5자녀 중 누구도 그 레시피를 전수 받은 사람이 없기에 그 김치는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내 기억 속 마지막 할머니의 모습은, 요양병원에서 준 멀건 국물을 앞에 두고, 엄마가 만들어간 간고기 볶음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지 기억도 못하시던, 여전히 피부가 고우신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사시던 집이 재개발되면서 꽤나 많은 보상금을 받아간 큰아버지는, 할머니가 음식 삼킬 기력이 없을 때 링거한번 안 맞춰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식방도 제일 작은 방에서 보내드렸고 나는 그런 상황들을 지켜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와, 이렇게나마 글로 할머니를 기려보려 애쓰고 있다. 마침, 어제 밤에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이상했다. 나와 그렇게까지 절절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마치 꿈에서 “민아야, 내 글을 쓰고 싶다고? 이제 다 괜찮다” 하시는 것 같았다. 일어나서 엄마께 여쭤보니 다음주가 할머니 기일이라고 한다. 이맘때 본인이 생각나게 하시려고 김장철에 하늘나라로 가신걸까




얼마 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 중 한명인 할머니가 에블린이라는 젊은 친구에게 레시피를 전수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읽으며, 할머니도 저런 기록을 해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레시피를 건네주기 위해 기록한 주인공의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것 같다.

그럼에도, 올해도 엄마의 손맛이 깃든 김치를 받아왔다. 아이들의 조물거림으로 안 그래도 정신 없는 김장이 더 부산하긴 했지만, 모두가 함께 만든 이번 김치야 말로 지금 내가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였음은 틀림없다.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서도 김치 레시피를 받아야겠다. 그 김치는 오래오래 맛볼수 있길 바라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