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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Jan 12. 2022

탕수육 먹는 날

신년과 방학을 맞아, 형님과 시조카들을 초대했다. 형님네는 매번 명절마다 지방인 친할머니댁에 오래 머무르기 때문에 명절에도 아이들끼리 만나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따로 날을 잡아 우리집을 개방하기로 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어서, 나와 남편이 초대 전날부터 집안 정리와 청소에 투입되었음에도 할 일이 끝없이 보였다. 쓸고 닦고 화장실 청소에, 매직블럭까지 동원해 싱크대 여기저기를 닦아 냈다.      


그렇게, 약속한 시간이 되어 형님네가 왔고,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집을 휘젓고 다녔다. 마침 아랫집이 인테리어 공사로 인해 비어있었기에 어른도, 아이도 더 편안하게 놀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숙제인 ‘이라는 미션이 당도했다. 미처 음식까지는 준비하지 못했기에 중국 음식을 시켜줬다. 짜장면에 탕수육. 이것이야말로, ‘특별한  시그니처 아니었던가. 내가 어렸을 때도 입학식, 생일, 홈파티 등에 빠질  없는 메뉴가 짜장면에 탕수육이었다. 때로,  당시 핫했던 신문물인 ‘피자헛 밀릴 때도 있었지만, 피자가 익숙지 않던 어르신들이 “여기 김치 없어요?” 외치셨던 것에 반해 중국 음식은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메뉴였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외식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때라, 우리 가족은 기념일마다 가는 중국 음식점이 따로 었다. 작은 소도시의 역사 , 번화가에 자리 잡은  중국집. 중국 교포분이 운영한다고 했던  가게는 마치 ‘여기부터는 중국이라는 깃발이 꽂힌 작은  같기도 했다.  도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국스러운 분위기가 가게 내부에서 풍겨나왔지만, 기념일이라는 특별한 날에는 가게에 들어가면 왠지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런 이국적인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어울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와 동생은 부모님이 ‘탕수육 시켜주길 간절히 바랬고, 기념일에만 먹을  있었던 탕수육은 유난히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고, 달콤했다.

출처 : 픽사베이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지금 아이들에게 탕수육의 의미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외식도 자주 하고, 다양한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하지만, 깔깔 대며 웃고 놀다가 짜장면 한입 후루룩하고 달콤한 탕수육까지 먹고 나서 느껴지는 행복감은 그때의 그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탕수육에 얹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부모들의 행복도 우리 부모님이 그 작은 중국집에서 낼름낼름 탕수육을 집어먹는 나와 내 동생을 보는 마음과 같은 것일테고 말이다.      


시조카들과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집을 개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하고, 아이들 시중들고, 또 엉망이 된 집을 치우느라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충만했다. (하지만 자주는 못하겠다;;) 아이들도 그런 마음이길. 떠들썩하지만 포근한 공기 속에서 까르르 웃으며 함께 먹는 탕수육의 맛을 기억해주길. 유난히 달콤했던 그 시절의 탕수육처럼 특별한 맛으로 기억되길.

      

그리고 깨닫는다. 어떤 이들을 집이라는 장소에 초대하는 것은 여기저기 묻은 손때와 먼지 등 내밀한 영역까지 개방하겠다는 의지라는 것을.  함께 따뜻한 음식을 두고 먹다보면 그런 일상의 얼룩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결국 서로의 마음을 내어주는 방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함께 모여 탕수육 먹는 날이 더 많아질 올해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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