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를 겪는 부부들에게
남편과의 권태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 육아인데 유난히 우리 부부는 육아가 힘겨웠다.
둘다 예민한 편이라 모든 자극에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의 쿵쿵대는 소리, 싸우는 소리, 짜증 섞인 대꾸, 치우고 치워도 여기 저기 널부러진 장난감들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런 예민한 부부에게 태어난 아이들 역시 예민해서, 자신들이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이들은 자주 떼썼고, 싸웠고, 울었다.
9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에게 소홀해졌고 남편은 집에 와도 자신만의 동굴을 찾아 안방을 차지하고 있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린 나는 퇴근 후 남편의 그런 모습이 못마땅했고 우리 관계는 어긋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제 아침.
아이들이 모두 기관으로 간 시간,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그나마 그럴싸한 옷을 입고
남편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가서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할 작정이었다.
약속이 있다고 하면 혼자 놀다 오면 될 일.
평소에는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과감한 나의 데이트 제안에 남편은 어리둥절해 했다.
그렇게,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9년 전, 매일 나도 출퇴근하던 길. 몸은 그 길을 잊지도 않고 성큼성큼 지하철 환승길을, 교보문고를 찾아냈다.
그리고, 멀리서 남편이 보였다.
매일 보던 그 사람인데도 낯설었다.
그 낯선 마음이 약간의 설레임으로 다가와 좋았다.
11년 전, 처음 광화문 sfc에서 만났을 때처럼.
둘다 광화문에서 일하던 시절에 만나,
퇴근 후 각자 회사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고 헤어졌던 시간들을 다시 대면하는 기분이란.
잠시 어색한 순간들을 지나, 자연스레 팔짱을 끼고
식당을 찾아다녔다.
항상 옆에서 쫑알대던, 챙겨주어야 하던 존재가 없으니
비로소 서로만 바라볼 수 있었다.
비로소 서로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일 수 있었다.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순간이었구나.
우리를 옭아매고 있던 현실 속 의무들. 청소, 빨래, 육아, 음식쓰레기버리기, 분리수거하기, 숙제봐주기, 재택근무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역설적으로 서로를 발견하는 그런 시간.
그 사이에 주름이 늘었고, 군살도 붙었지만, 그는 변한게 그다지 없었다.
그는 여전히 다정다감했고, 섬세했다.
집에서는 잔소리라고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온몸에 곤두세웠던 촉수들이 수그러들며 다시 다정함과 세심함으로 다가왔다.
나도 다시 그때처럼 재기발랄한 모습으로 그에게 느껴졌을까.
우리의 데이트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나는 하교한 아이의 곁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점심시간이 끝나서 회사로 복귀했다.
하지만, 퇴근 후 돌아온 남편과 나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이전과 달라졌음이 분명하다.
잠깐의 데이트가,
과거의 그 순간들을, 감정들을 다시 되짚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를 살아나가게 해주었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들에게,
잠시,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감행해보라 말하고 싶다.
(가출 같은 돌발 행동 말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일상의 틀을 잠시 깨트림으로서 역설적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되도록 자주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리라 다짐하며,
여보 사...사.........(오늘도 경상도 여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