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으로 다시 돌아갈 때
집안일의 노고를 모를때,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 내가 입는 옷, 내가 뒹구는 공간 뒤에 다른 누군가의 손이 있음을 몰랐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외식을 하러 나가면 종종 엄마가 좀 창피하고 짜증나게 느껴지곤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별 생각없이 먹는데 엄마는 꼭
"집에서 내가한거보다 더 맛이 없네."
"이걸 이돈 주고 먹다니 돈이 아깝다."
"집에 가서 양푼에 밥이랑 나물 넣고 비벼서 비빔밥이나 해먹어야겠다."
등등 조금씩 변주를 했지만, 일맥상통하게 "맛이없다"를 연발하며 잘 먹고 있는 나의 입맛까지 떨어지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상도 사람이라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가끔씩은 식당 주인 아줌마가 들릴 정도로 크게 이야기하는 탓에 민망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집안일의 A부터 Z까지 도맡아 하는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엄마의 그런 투정과 불평의 뜻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때이른 여름 더위가 불쑥 찾아왔던 얼마전,
습도는 높고 뙤약볕이 내리쬐던 토요일.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나간 김에 외식으로 (나의) 숙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영화관 근처에 우동/돈까스 집이 생겼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이미 만석. 찌는듯한 더위에 30분 이상을 웨이팅하고 겨우 자리를 잡고 밥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영접한 우동 세트!!
그런데 그 더위를 이겨내며 오랜시간 기다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에는 맛이 너무나 평범했다.
우동 위에 올라간 새우튀김은 눅눅했고, 샐러드의 야채는 축늘어져있어 보잘것이 없었으며 유부초밥도 그저 살짝 양념한 맨밥을 유부에 싸놓은 정도였다. 그렇게 4 식구가 먹고 나니 5만원은 훌쩍 넘는 영수증만이 남았다. 영화 시간이 임박해서 밥에 대한 평을 할 시간도 없이 헐레벌떡 영화관으로 향했지만, 내심 외식이 마음에 안들때의 엄마의 불평이 내 마음에도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일주일이 지나 맞이한 주말.
내 손이 조금 바쁜게 낫다 싶어 아침부터 오이, 당근을 다지고, 다진 쇠고기에 살짝 양념을 해서 달달 볶았다. 오이를 볶을때 나는 향긋한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그렇게 만든 소에 밥을 넣고 유부초밥 세트에 들어있는 양념을 살짝 두른 후 주걱으로 와구 섞어준다. 그런 후 꽉 짠 유부에 내용물을 가득가득 넣어주면 유부초밥 완성. 유부가 부족해서 남은 밥에는 김가루와 깨소금을 넣고 동글동글하게 빚어 주먹밥으로 만들었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에도 뭣할 정도로 간단한 메뉴지만 주말 점심 메뉴로는 훌륭했다. 달큰한 유부 안에 오도독 씹히는 오이와 당근의 질감이 좋았다. 무엇보다 열심히 오물거리며 먹는 가족들의 입을 보니 내 마음이 좋았다.
물가가 나날이 올라가다보니,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상황이 힘드실 것 같다. 식재료 값도, 인건비도, 임대료도 모든 것이 상승곡선일테니 말이다.
그 분들의 노고를 비하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남이 해주는 음식이 이제 그저 맛있지만은 않아진 나의 상황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간단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던 외식이었는데, 그 장점보다 집에서 손수 만들어서 해먹는 음식의 장점이 클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주부의 한탄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덥고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보니 반찬가게를 애용하고, 냉동식품이나 패스트푸드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찬찬히 시간을 들여서 재료를 손질하고 데치고 볶아 만든 음식의 소중함을 이제는 몸으로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된 듯하다.
책과 읽는 사람의 만남에도 인연이 있다고 하던가, 마침
<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책에서 박완서 선생님과 따님인 호원숙 작가님의 집밥, 식재료 등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있다.
바쁘고 파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이 누가 매실청을 직접 만들고, 나박김치를 담그어 제사상을 차리겠냐만은, 그렇게 정신없는 시대이기에 한 식재료를 천천히 다듬고 오랜 시간 기다려 내 손으로 차려 먹는 음식의 가치가 오히려 더 빛나는 문장들이었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만두에 대한 글귀를 공유해본다.
밀가루를 익반죽해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드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커다란 나무 판때기에 밀가루를 묻혀놓고 밀가루 반죽 덩어리에서 밤톨만 하게 떼어낸 반죽을 밀던 엄마의 손. 밀가룰 반죽을 치대고 만두피를 밀던 손에는 특별한 악력이 있었다. 그러나 억척스럽거나 그악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온 힘을 모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손의 표정이 생생하다.
(중략)
요즘의 나는 만두피야 사서 쓰지만 만두소는 그때와 다르지 않게 하고 있다. 숙주와 배추와 김치 그리고 돼지고기 간것, 표고버섯과 두부를 넣는다. 숙주를 삶아 작게 썰고 밑간을 해놓는다. 겨울배추는 달큰하기에 데쳐서 잘게 썰고 물기를 꼭 짜놓으면 간을 할 필요가 없다. 김치는 잘 익어 맛이 좋은 줄기부분을 골라 고춧가루를 대충 훑어내고 참기름으로 밑간을 해놓는다. 물기가 많으면 만두가 터지기 쉬우니까 베주머니에 넣어 손으로 짠다. 그러나 물기를 다 짜버려도 딱따해져서 맛이 없다.
두부의 물기도 마찬가지로 손목의 힘으로 짠다. 돼지고기는 미리 갈아놓은 고기는 쓰지 않는다. 목살을 따로 갈아달라고 해서 쓰면 맛이 다르다.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빚기도 한다. 소금과 참기름과 설탕과 마늘이 양념으로 들어가고 달걀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고기, 야채, 버섯과 두부가 섞이면서 적당히 예쁜 색깔이 나오면 좋다. 고기가 많이 들어가면 뻑뻑하고 야채만 많이 들어가면 허무하다. 내 입맛에는 그렇다.
만두박사라고 불릴 정도로 만두를 좋아하던 박완서 선생님의 아드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만두를 빚으셨던 그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싶어 울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 손수 만두를 만들었던 이유는 호원숙 선생님의 마지막 글귀에 있지 않을까.
만두를 먹고 싶다는 게 단순한 식욕뿐이었을까? 식욕보다는 훨씬 절실한 것.
밥을 짓는 엄마들에겐
식욕보다는 훨씬 절실한 마음이 있어,
번거롭지만 손수 집밥을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이제야, 외식을 하러 가서 투덜투덜하던 엄마의 마음을 일부라도 알게된 못난 딸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