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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Mar 13. 2022

격리 중 만난 참외의 맛

개학 다음날이었다.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아이들이 등교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기침, 가래와 오한, 근육통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아이들의 개학인 동시에 엄마의 개학이기도 했을 테니,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이 통증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자가진단 키트를 해보았지만 깨끗한 한 줄. 이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열감이 느껴졌고, 목도 뜨끈뜨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감기는 아닌 것 같아 몇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자가진단 키트를 해보았더니 너무도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화들짝 놀라 PCR 검사를 하러 갔다. 몸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아 보건소 줄을 설 자신은 없었고, 처방약이 간절했기에 PCR 검사를 해주는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타이레놀이 그제야 약빨이 듣는지, 누가 봐도 눈에 뜨일 정도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검사를 하고 약국에 들러 집으로 돌아왔다.       




반전은 없었고, 그렇게 나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다행히 첫째는 온라인 수업 중이어서 등교를 하지 않았고, 둘째도 점심시간 전에 급히 유치원에서 데리고 왔기에 주변에 폐는 최소한으로 끼쳤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급하게 아이들과 격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6살, 10살이 자기네들끼리 지낼 수 있는 시간이란, 서너 시간이면 감사한 정도였다. 특히 안방을 들락날락 대며 살을 비비는 둘째와 ’ 격리‘라는 단어는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시간들을 보내고, 하루 뒤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뒤 첫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음성인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재우고 나는 새벽 내내 아이들의 열보초를 서야 했다. 한 아이가 새벽 1시에 해열제를 먹으면 다른 아이가 새벽 4시에 열이 들끓었다. 나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40도 가까이 되는 고열 앞에서, 나는 초인이어야 했다. 다행히도 나의 코로나 증상은 가벼운 편이어서 3일이 지나자 증상은 많이 호전되어 버틸만한 정도였다. 엄마 역할은 하라는 계시라고나 할까. 불행 중 다행인 시간들이 지나가고 아이들도 꼬박 이틀을 고생하니 열이 떨어져 쌩쌩해졌다. 마치 시들던 꽃에 신선하고 시원한 물을 부으면 다시 꽃에 생기가 돌 듯 아이들의 생명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음성이던 남편까지 증상이 생겨 확진을 받으며 우리 집은 결국 초토화가 되었다. 모두가 항체 보유자가 되었으니, 좋게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때론 억울하기도 하고 때론 답답하기도 한 무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 와중에, 먹는 일은 고역이 되었다. 미각이나 후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물맛마저 쓰게 느껴져,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던 것이다.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들을 먹으며 입맛을 돌게 해보려 애썼지만, 치킨은 소태처럼 짰고, 짬뽕은 너무나 자극적이었고, 빵은 너무 달았다. 이렇게나 음식이 짜고 달고 쓰게 느껴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도 떨쳐내려 애썼지만 내 몸에 딱 달라붙어있던 살이 저절로 1킬로가 빠지는 일마저 일어났다. 너무 예민해진 감각 탓인지, 바이러스로 무뎌진 감각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얼 먹어도 맛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딱 하나, 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참외였다. 아삭아삭한 과육을 씹었을 때 터져 나오는 달콤하고 시원한 맛. 깔깔한 입안을 깔끔하고 청량하게 만들어주는 그 맛. 지금껏 먹은 참외 중에 가장 맛있는 참외였노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의 소중함을 글로 써댔지만, 막상 일상의 소소한 맛들을 느낄 수 없을 때에야 몸소 그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었다. 일상은 소중하지 그럼, 하고 머리로 아는 체했던 것과 당연한 맛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을 직접 맞닥뜨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참외의 맛은 바로 일상의 맛이었던 것이다. 겪어 보지 않으면, 몰랐을 그 맛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일상으로 조금씩 발을 디딛게 해주어서, 회복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임에도 감사하며. 잘 가라 코로나. 멀리 안 나간다. 다시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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