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서평
이 책은 낯설어도, ’스티븐 킹‘은 익숙한 이름이다. 스티븐 킹도 익숙치 않다면, 영화 미저리, 쇼생크탈출, 그린마일, 샤이닝 등의 원작자라고 하면 “아~” 하며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스티븐 킹은 원작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을 만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킹은 아버지의 부재로 아들 둘을 혼자 키워야 했던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생계를 잇기 위해 세탁 공장, 경비원 등을 전전하다 영어 교사로 일하며 잡지에 실리는 단편 소설로 근근히 살아간다. 그러다, 첫 장편 소설 “캐리”가 대형 출판사와 계약한 이후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연속으로 출간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창작론을 담은 논픽션으로, 크게 4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력서/연장통/창작론/인생론으로 나누어, 이력서에서는 작가로 성장하게 된 이야기, 연장통에서는 문법, 어휘, 문단 등 글쓰기의 기술적인 측면, 창작론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철학, 인생론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게 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야말로, 글쟁이가 글을 쓰게 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런만큼,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듯하다가도 뭉클한 에세이가 되고, 그러다가도 진지하게 글쓰기에 대한 팁을 담아 실용서로 읽히기도 하는, 대단한 입담의 책이었다.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글쓰기란, 유물 발굴과도 같다. 그는,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p.199)
라고 한다.
마음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온전하게 종이 위로 옮겨내는 과정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아티스트 웨이’ 역시,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하면서 예술이란 내면에 떠오르는 것을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어떤 형식에 그대로 옮겨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제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자기 내면에 갇혀있는 창조적인 힘이 마음껏 움직이도록 의식 속에 길을 터주는 것이다. 그런 길을 만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창조성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떻게 보면 창조성은 피 같은 것이다. 피가 당신의 몸안에 흐르고 있지만, 당신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듯이, 창조성도 당신의 정신 속에 존재하지만 당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p.24)
이미, 내 안에 있지만 자기 검열, 외부 상황,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우리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창조성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스티븐 킹이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창작의 ‘문’을 내야 한다.
스티븐 킹에게는 그 문을 열어준 사람이 세 명 있다.
첫 번째는, 그의 어머니이다. 그가 어린 시절 만화책을 베껴 만든 모방작을 어머니에게 보여준 후, 모방작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왕이면 네 얘기를 써봐라, 스티브. <컴뱃 케이시> 만화책은 허섭쓰레기야. 주인공이 걸핏하면 남의 이빨이나 부러뜨리잖니. 너라면 훨씬 잘 쓸 수 있을거다. 네 얘기를 만들어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엄청난 '가능성'이 내 앞에 펼쳐지듯 가슴이 벅찼다. 마치 커다란 건물 안에 들어가서 그 수많은 문들을 마음대로 열어보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 문들은 평생토록 열어도 미처 다 열어보지 못할 것 같았다(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두 번째 인물은, 그의 아내 태비사이다. 태비사는 그가 쓰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캐리’(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의 초고를 다시 주워 읽어보고는 "이 소설엔 뭔가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라고 하며, 다시 쓰기를 권한다. 그 덕에 ‘캐리’는 완성될 수 있었고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게 된다. 태비사는 그에게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준 인물인 것이다.
마지막은 그 자신이다. 그는 글쓰기를 향한 문을 열고, 닫으며 글을 써왔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뜻이었다. 일단 자기가 할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그것을 올바르게 -어쨌든 자기 능력껏 올바르게- 써놓으면 그때부터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비판도 그들의 몫이다. 그리고 작가가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이라면 그의 글을 비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보다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그가 ‘유혹하는 글쓰기‘ 책의 초고를 쓰고 있다가 큰 교통사고가 나서, 무릎에 철심을 여러 개 박아 대수술을 몇 차례나 하고 거동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글쓰기를 향한 문을 다시 냈고, 그렇기에 이 책이, 그 후의 작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집을 짓는 과정이다. 차곡차곡 글감을 모아, 구상을 하고, 글을 매만져 누군가에게 가닿는 일. 스티븐 킹 같은, 대작가의 유물 발굴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읽고, 오늘도 허접한 연장과 기술로 작은 오두막이라도 짓는 나를 응원하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써내려가서 마음을 채웠으니 된 것 아닌가!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 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이 부분이 가장 쓸모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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