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비겁한 단어들'로 무장해야 하는 나이

애쓰지 않는 삶을 위하여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수채화는 붓 칠을 한 그 순간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물과 물감이 만나 만들어내는 형체, 그 퍼져나가는 자연스러움이

수채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도야마에 여행을 갔을 때,

바다 앞에 머물러 두 시간 정도 앉아서 바라보다 보니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물의 흐름에 맞추어 파도를 타고 있었는데,

나는 서핑을 해본 적이 없지만 파도에 몸을 내던질 줄 알아야만

자연스럽게 파도를 탈 줄 알게 될 거란 생각이 들면서

그때까지 왜 내가 삐거덕거리며 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아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수채화와 서핑, 모두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 생각한다.

그 자연스러움은 ‘물’과의 화합에 있다.

물이 가진 유동성이 그들을 더 예측 불가능하게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유동성이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에 상당히 집착을 하는데,

자연스럽다는 것은 곧 억지로 애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자연스러운 삶은 애쓰지 않는 삶이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나보다 더 큰 운명이라는 물결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에는 주어진 것들을 ‘거스르면서까지’ 나를 더 채찍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고통받고 애쓰면서까지 원하는 걸 쟁취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고통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보람을 동반한 고통도 있지만, 한없이 아프기만 하여

사람을 맥이 빠지게 만들고, 아무것도 못 할 만큼 무기력하게 만드는 고통도 있다.

후자가 반드시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때로 정말 가치 없다고 느끼는 아픔도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되지 않는 일을 애쓰면서 얻은 상처라 생각한다.


운명에 내맡기면 오히려 삶을 재미없게 만든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내맡기며 사는 게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며, 더 큰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근육을 풀고, 파도에 내 몸을 실어버린다는 건,

역으로 난 이 바다가 날 집어삼켜도 좋을 만큼의 용기를 가져야만 할 수 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굉장히 유유자적한 삶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삶이다.


애쓰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억지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민첩하게 알아내어

애를 쓰는 순간 금방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운명의 장난에 놀아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큰 흐름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결국 나와 살아가는 다른 생물체와의 화합을 위해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운명에 맡기는 현명한 포기도 필요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하지만, 포기라는 건 때로 정말 지혜로운 미덕이 되기도 한다. 그 포기도 온전히 나의 판단으로 내린 것이고, 그 포기가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면, 얼마든지 포기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포기는 끝을 내는 것 같지만, 다른 시작을 위해서 비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른넷이 되어서야 이런 ‘비겁한 단어들’로 나를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여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말들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족쇄였으며, 그것들을 자유롭게 쓸 줄 알 때 해방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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