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10년 동안 간직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엔 20대에 실제로 유학을 하게 되었지만
분명 그전에는
‘나는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할 거야.’라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비웃음을 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수없이 많은 결심을 나 혼자 끼적였고,
10년간 쉬지 않고 중국어 공부를 하였다.
말뿐인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 꿈을 꼭 현실로 만들겠노라 매년 다짐하며 지냈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를 비웃었던 이들에게 나 또한 비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 또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을 뿐이다.
대단할 게 하나도 없다.
나는 말뿐인 사람을 참으로 싫어한다.
하지만 이제는 싫어한다고 쓰는 데 죄책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도 점점 지키지 않는 말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버리는 것 또한 성장의 한 방법임을 깨달은 서른넷.
버리면서 결국 나 또한 말뿐인 것들을 수없이 양산해내는
뻔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그 말조차도 못 던지고 사는 사람도 많지만,
너는 하고 싶은 게 많은 것만으로도 축복이야.
글쎄.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첫째, 말은 뱉어야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아 무작정 뱉는 것들도 많았다.
여전히 꿈이라는 식상하고 진부한 개념을 품고 사는 어른이라는 위안을 받게 되니까.
그리고 실제로 뱉고서 이뤄지는 일이 정말 많았기에.
둘째,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러니까 살아 있는 한
어느 시점에 그 꿈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이뤄진 꿈이 된다.
내가 뱉는다고 해서 지금 당장 혹은 근 10년 안에
반드시 그것들을 꼭 이룰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굳이 그들에게 내가 언제 이것을 이룰 거야, 라고 단정 짓는 것도 싫다.
그럼에도 사실상 내가 뱉은 꿈들을 다시 하나씩 주워 담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분명 몇 달 전에는 간절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그것들과 벌써 멀어져 있음을 알아채곤 한다.
10년간 담고 있는 꿈도 있는 반면,
몇 달만 품을 수 있는 꿈도 있는 것이다.
몇 달 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걸 원한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그것과 멀어지게 되면
마치 내가 말뿐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묘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오늘 처음 ‘그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가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내가 부자가 된다면’이라고 시작되는 수많은 상상과 무엇이 다른가.
내 꿈이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꿈을 이룬다면’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상상들까지 죄는 아니다.
삶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엔
정말 말뿐인 것들만 잔뜩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의 말이 나보다 더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한 치 앞도 모르기에
만약 내가 내일 당장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지금 내가 떠들고 있는 꿈들도
정말 말뿐인 것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 어떤가.
적어도 ‘그런 것들을 꿈꾸었던 사람이었어.’ 정도로는 끝날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차라리 말을 안 하느니
말뿐인 게 낫다.
말뿐인 사람이 될까 두려워 뱉지 않는 꿈보다는
말뿐이 될지라도 그냥 뱉어버리는 꿈이 낫다.
서른넷이 되니 그렇다.
그렇게 뱉어버린 말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하루가 있으니까.
그러면 됐다.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 내가 될 필요도 있으니까.
(feat. 정치인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