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레를 잘 발견하는 눈을 가졌다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유독 무언가를 잘 발견하는 눈은 축복일까, 피곤함을 유발하는 원인일까.


누워 있는데, 천장에 기어가는 좁쌀만 한 벌레가 기어가는 게 보인다.

천장에 있다, 그리고 작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유로워졌다.

너무 멀어서, 그리고 너무 작아서

내가 그를 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벌레를 잘 발견하지만

그것을 죽일까 살릴까를 결정하는 건 또 다른 과제다.

예전에는 벽지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아주 작은 벌레들을 잡는 게

마치 젓가락으로 콩을 줍는 훈련을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들을 죽이는 동안 내 스스로 전지전능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또한 참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벌레를 잘 발견하는 만큼 오히려 벌레를 외면하는 일이 많아진다.

만약 내가 벌레를 잘 발견하지 못해 어쩌다 발견하는 수준이라면,

그것들에게도 나름의 사정과 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어도 나의 삶에 큰 방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혹은 내가 그에게 방해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다면,

그와 나는 이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

자연은 세를 내지 않으니까.

생물은 이 공간을 평생 자기 멋대로 쓸 권리가 있음에도

나는 내가 이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나는 벌레를 잘 보는 눈을 가졌다.


그와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인간다워지는 건지,

그를 없애 나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는 것이 더 인간다워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답다는 게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을 지닌 상태를 뜻한다면

벌레를 잘 보는 눈을 가진 것은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재주인지,

인간만도 못한 인간이 되게 하는 저주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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